이조판서 배출 등 가문 빛내…과거급제자 7명
현재 후손 1432명 … 충청 지역에 286명 거주
손필영의 아들 손 취는 고려 때 영녕군에 봉해졌고, 손자 손 희는 자헌대부로 서북면 도순문사를 역임했다. 손 희의 맏아들 손원렬은 찬성사를 거쳐 우문관 대제학을 지내면서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손원렬의 아들 손 채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진천에 낙향하여 절의를 지켰으며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그의 증손자 손근종은 이조 참판에 추증되어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손희언, 부호군을 지낸 손 선, 손 환 등과 함께 청주손씨를 빛냈다.
항렬자는 21世 병(炳), 22世 재(在), 23世 현(鉉), 24世 한(漢), 25世 동(東), 26世 섭(燮), 27世 규(圭), 28世 옥(鈺), 29世 해(海), 30世 즙(楫), 31世 혁(爀)이다.
본관 청주(淸州)는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도청소재지이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 상당현(上黨縣),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685년(신라 문무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청주(淸州)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995년(성종 14)에는 절도사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도 청주목을 유지하면서 충청도의 정칟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651년(효종 2)에는 충청도의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되어 충청도의 군사적인 중심지도 겸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청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충청북도 청주군이 되었다.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청주시로 개칭하였고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으로 청주시 지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청주 본관 성씨는 청주갈씨(淸州葛氏), 청주경씨(淸州慶氏), 청주고씨(淸州高氏), 청주곽씨(淸州郭氏), 청주궉씨(淸州?氏), 청주근씨(淸州斤氏), 청주김씨(淸州金氏), 청주돈씨(淸州敦氏), 청주동방씨(淸州東方), 청주박씨(淸州朴氏), 청주배씨(淸州裵氏), 청주석씨(淸州石氏), 청주손씨(淸州孫氏), 청주송씨(淸州宋氏), 청주신씨(淸州申氏), 청주양씨(淸州梁氏), 청주양씨(淸州楊氏), 청주류씨(淸州柳氏), 청주유씨(淸州劉氏), 청주윤씨(淸州尹氏), 청주이씨(淸州李氏), 청주임씨(淸州林氏), 청주장씨(淸州張氏), 청주좌씨(淸州左氏), 청주정씨(淸州鄭氏), 청주조씨(淸州趙氏), 청주준씨(淸州俊氏), 청주지씨(淸州池氏), 청주최씨(淸州崔氏), 청주한씨(淸州韓氏), 청주허씨(淸州許氏), 청주황씨(淸州黃氏)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7명이있다. 문과 1명, 무과 1명, 사마시 5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주손씨는 1985년에는 총 588가구 2712명, 2000년에는 총 459가구 143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30여 가구, 1300여 명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조사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694명, 부산 168명, 대구 111명, 인천 84명, 경기 306명, 강원 208명, 충북 223명, 충남 248명, 전북 125명, 전남 242명, 경북 126명, 경남 150명, 제주 27명이다. 서울, 경기 지역에 많이 살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55명, 부산 66명, 대구 69명, 인천 61명, 광주 10명, 대전 45명, 울산 28명, 경기 262명, 강원 140명, 충북 176명, 충남 65명, 전북 25명, 전남 18명, 경북 59명, 경남 47명, 제주 6명이다. 서울, 경기 지역에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