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에서 여학생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워낙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학생으로만 구성된 남자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만큼 학교 여기저기에는 남성다운 흔적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학교 건물 벽 군데군데에 찍힌 신발 자국과 교실 문이나 책걸상에 나있는 각양각색의 상처가 그것을 증명한다.

킬마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의 가치는 축척된 자본의 양이나 몸값에 따라 평가된다고 하였다. 경제적 능력이 남성적 권위와 권력을 부여하여 남성의 정체성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남성이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진정한 남성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결국 남성의 경제적 능력은 최상의 권력이며 남성의 매력도 경제적 힘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남성이 직업을 잃거나 수입이 줄어들게 되면 무력감이나 소외감을 느끼며, 정체성마저 위기에 직면한다.

홉스테드에 의하면 남성적 사회의 지배적 가치는 돈과 물건에 집중된다. 여성적 사회의 지배적 가치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겸손하며 따뜻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하지만 남성적 사회의 남성들은 자기 주장적이고 야심만만하며 거칠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대면 한국 사회는 남성성이 강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유유서적 질서와 가부장제 및 군사문화 등이 자본주의 경제논리와 연결되어 남성적 지배구조가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에 여성은 차별되고 소외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남성성은 변화된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학교가 점차 여성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기인하는 부분이 많다. 작년에 우리학교는 집중이수제로 인하여 유래 없이 1학년 학생들에게 체육 수업을 실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대부분 교사들은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육시간을 잃어버린 1학년 학생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교실이나 복도를 상관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화장실을 갈 때나 점심 식사시간뿐만 아니라 하교시간에도 뛰어다녔다. 뿐만 아니라 실내 장난이 심하여 상처가 나거나 팔다리가 부러진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이렇게 다친 학생을 2, 3학년 학생들과 비교해보니 그 숫자가 훨씬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눈치 챈 학교 측은 점심시간만이라도 1학년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운동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졸속적이고 근시안적인 교육정책이 남학생들의 남성성을 얼마나 억압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 자체가 학생들의 덕성이나 체력보다는 지식 습득에 치중하는 시스템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현실은 능동적인 남학생보다는 수동적인 여학생에게 더 유리한 경향이 없지 않다. 수업시간에 소란을 피거나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남학생보다는, 차분하게 교사의 말에 귀 기울이는 여학생이 더 모범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생을 둔 남학생 학부모들은 남녀공학 중학교 진학을 기피하고 있다. 여기에 진학하게 되면 높은 내신 성적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이 운동이나 게임에 빠져있을 때, 여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은 수행평가까지 꼼꼼하게 챙겨 남학생들보다 높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학교 분위기에서 남학생들은 남성성을 억압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면에 여학생들은 학교에 적응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사회 진출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실제로 이미 교직의 절반 이상을 여성이 차지했으며, 앞으로 법조인이나 의료계 및 전문직 진출에도 남성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남자로서, 아들 만 둘 둔 아버지로서 심히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지, 덕, 체의 조화로운 교육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재국 세광중교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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