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닭에게 예방접종을 했는데 후유증인 줄 알았단다. 며칠 지나면 호흡기 증상이괜찮을 줄 알았는데 호전되기는커녕 멀쩡하던 닭들이 몰살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계사(鷄舍)에도 같은 증상이 시작되면서 혼절했다가 겨우 정신 차렸다고 했다.
부랴부랴 검사용 장구를 준비하여 농장에 방문하니 폭격 맞은 듯 수천마리 닭들의 죽어 널부러져 있었다. 아무리 심한들 이만한 피해를 입히는 전염병 앞에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종계장이라는 곳은 병아리를 생산하는 농장으로 질병예방프로그램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사업장이다. 그런 농장에서 닭들의 주검을 마주하니 고병원성이라는 진단 외에는 달리 생각할 대안이 없었다. 우려했던 대로 최종 검사결과는 고병원성 AI로 확정되었고, 한 달 이상 사상 초유의 대대적인 방역이 시작되었다.
1995년도 이후의 시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86년도부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개시되었다. 기존 GATT체제하에 자국의 무분별한 보호관세를 벗어나 국가 간 교역의 장벽을 낮추자는 취지였다. 장장 9년간의 마라톤협상의 결과로 WTO라는 세계무역기구가 탄생하였다. WTO의 출범으로 무역문호는 넓어졌으나 동식물 검역의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국민소득인 높아지며 마이카 시대가 열리고, 해외여행도 자유로워 졌다. 축산업은 산업화와 규모화 되고, 국내 교통망의 발달로 관련 산업들끼리 전국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러한 환경여건의 변화는 전염병이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간 또는 국가적인 문제로 부각되는 양상으로 변하였다.
1996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저병원성 AI가 발생하고 1997년에는 대만에서 첫 구제역이 발생하던 때가 그 즈음이다. 2000년도가 넘어가면서 세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구제역과 고병원성AI가 들불처럼 발생하여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 지금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나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화의 귀재이다. 다양한 숙주동물을 넘나들면서 감염되며 새로운 형태로 빠르게 진화한다. 153가지의 다양한 혈청형으로 언제, 어떤 형이 유행할지 예측하지 못하여 예방접종도 쉽지 않다. 오로지 철저히 예방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다. 또한언은 인플루엔자의 계절이다. 찬바람이 불면 숙주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는 활성화되어 사람과 동물을 괴롭히는 계절이 겨울이다.
지금은 WTO를 넘어 FTA시대이다. 훨씬 많아진 국가 간 물류이동과 인적교류, 훨씬 발달한 교통망과 다양해진 사회적 네트워크는 전염병에 관한한 늘 불안한 요소다. 그래서 인플루엔자 예방은 축산 농가뿐만 아니라 시민도 함께 협력해야 효과적이다. 모두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함은 물론, 구제역이나 AI 발생국은 여행을 자제하거나 자진하여 검역신고를 하고, 불법 동식물을 반입해서는 안된다. 철새 이동시기에 강, 하천, 습지의 답사를 자제하고, 축산농가에 출입할 때는 철저한 방역조치가 필요하다.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던 고병원성 AI로 10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겨울이 되었다.올해도 도민이 함께하여 위험시기를 슬기롭게 넘겨, 농촌과 도시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여 모두가 윤택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10년 연속 AI가 발생하지 않은 곳이 바로 자랑스런 우리의 고장 충북이다.
/박재명 충북도청 동물방역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