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비비와 활비비 하면 단어조차 생소하여 그게 어떻게 생긴 도구이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거나 달리 도구이름 자체에서 흥미를 갖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어릴적 단추구멍에 실을 넣고 돌려서 양손으로 잡아 당겼다 놓고 하면 회전력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돌아가던 놀이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도 언제든지 단추와 실만 있으면 해볼 수 있는 놀이이다. 바로 이런 관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좌우로 돌리면서 구멍을 뚫거나 불을 일으키는 것이 눌비비와 활비비인 것이다.
불 일으키기와 구멍 뚫기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류의 생활에서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불을 사용한 시점은 전기 구석기시대인 50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들은 단지 불의 사용(use)이 아니라 불을 일으킬줄(make)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불을 일으키는 방법은 십수년전에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사막에 거주하는 부족인 부시맨이 하였던 방법과 같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무막대를 판자에 대고 양손으로 막대를 돌려 비벼서 불을 일으킨다.
구멍을 뚫은 시점도 이와 비슷하여 구석기유적에서 발견되는 뼈와 돌로 만든 뚜르개(송곳) 연모와 구멍뚫린 치례걸이(목걸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이전과는 달리 보다 더 효율적으로 불을 일으키거나 구멍을 뚫기 위하여 생나무의 양끝을 줄로 매어 활시위처럼 만든 뒤, 송곳이 달린 원통형의 수직 축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활비비로 발전하였다.
활비비는 축을 감아 돌리는 회전력을 이용한 도구인데, 활비비 수직 축의 끝에 달린 송곳의 재료는 신석기시대에는 돌송곳이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송곳이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철송곳을 부착하여 사용하고 있다.
활비비보다 좀더 발전한 것이 눌비비이다. 활비비는 양손을 다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는 반면 눌비비는 한손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다른 한손은 기물을 잡거나 하는 잇점이 있다.
눌비비의 모양새와 과학원리를 살펴보면, 중심축 맨 아래에는 송곳이나 색연필모양의 단단한 나무가 달려있고 바로 위부분에는 호박 또는 원반모양의 뭉둑한 나무뭉치를 붙여 무게를 주었다. 눌비비 중심축의 맨 윗쪽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서 줄을 양쪽으로 늘이고, 중심축에 구멍 뚫린 긴 나무를 수평으로 끼워 중심축의 맨 위와 이 나무 양끝을 줄로 이어 자연스럽게 삼각구도를 갖게 하여 눌렀을 때 누르는 힘이 고르게 전달되어 안정감을 갖도록 고안하였다. 즉 중심축을 돌리면 이 양쪽 줄이 엇갈리면서 감기어 구멍 뚫린 나무가 올라가는데, 이 나무의 좌우를 잡고 위아래로 오르내리면 중심축의 엇갈린 줄이 계속 풀렸다 감겼다 하면서 중심축을 돌려주게 된다. 이때 송곳 위의 나무뭉치는 무게로 인한 관성으로 회전하면서 실을 풀었다가 다시 감아주고 다시 지긋이 눌러주면 축이 계속 돌게되어 구멍을 뚫거나 마찰열에 의한 불을 일으킨다. 또한 이 나무뭉치는 자동차의 플라이휠(fly wheel)의 역할을 하여 회전이 고르게 지속되는 구실도 한다. 이러한 운동을 계속하면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구멍을 뚫거나(지금의 전기드릴과 같은 원리) 불을 빠르게 일으킬 수 있게 된다. 눌비비는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단추와 실의 탄력을 이용한 놀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리를 도구로 발전시킨 좋은 예이며, 우리는 생활주변의 모든 원리들을 적극 이용했던 조상들의 독특한 과학슬기를 찾아 볼 수 있다.

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