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지휘자를 보면 곧 자신이 생겼다. 저건 나도 하겠다 싶었다. 가끔 절정 부분에서 머리를 흔들어 주거나 양 팔을 크게 흔들어 강조하면서 4분의 2박자나 4분의 3박자, 또는 4분의 4박자나 8분의 6박자로 박자 젓기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연습을 오래 해야 저런 아름다운 노래가 나올 텐데, 그러면 지휘자는 평생 악기 연주 하나 못하고 말 것 같아 측은하게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다 알아 어느 부분에서 어떤 게 연주 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강하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 약하게 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인 줄 전혀 몰랐던 거다.
음악회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지휘자에 따라 단원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는데도 온몸으로 반응하는데 어떤 이는 온몸으로 지휘를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단원 전체가 같이 춤을 추게 만드는데 어떤 이는 혼자서 춘다. 또 어떤 이는 살얼음 위로도 뒷짐 지고 걷게 만드는데 어떤 이는 한 자가 넘는 얼음장 위에서도 깨질까 봐 불안해한다.
두 번째는, 같은 음악이라도 지휘자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지휘자는 부드럽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강하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떤 이는 슬프게 만드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가늘게도 하고 굵게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편안하게도 한다.
같은 단원이고 같은 악기인데 신기하게 지휘자에 따라 다 다르게 반응하며, 같은 노래이고 같은 가락인데 그 맛이 다 다른 것이다.
지휘자가 지휘하는 동안에 관중은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지만 그러나 평안히 웃는지, 힘들어 하는지 뒤에서도 다 보인다.
지휘자는 그 노래에 통달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표 하나 쉼표 하나를 다 기억해야 한다. 같은 음표라도 어느 것이 강한 소리를 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같은 쉼표라도 어느 것이 깊은 숨인지 알아야 한다. 자나 깨나 그 노래만 생각하고 드디어는 득음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단원이 따라오고 악기가 제대로 소리를 내며 노래가 완성되어 관중이 감동하는 것이다.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많다. 각 단체의 우두머리들은 모두 그곳의 지휘자다.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무대에 오를 때는 완성된 지휘자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래를 망치고 관중을 실망시킨다.
아무라도 갖다 앉히면 다 그 역할을 하게 되므로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있는 동안 구성원들은 다같이 힘들어야 한다.
사람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훈련된 사람이어야 한다. 새해에는 그런 사람들이 지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