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곧고 굽지 않아 명암(明暗)이 없다면 무엇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는다. 떳떳하고 당당한 마음은 걸림이 없다. 이러한 마음을 강(剛)이라고 한다. 이러한 강(剛)은 강(强)한 것이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이 강하다는 말이다. 강(强)은 힘을 믿지만 강(剛)은 사랑함을 믿는다. 강(剛)은 안긴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 같은 것이다. 걸림이 없는 마음은 행동하는데 망설임이란 없다. 해야 할 일이면 반드시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하거나 못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은 마음과 행동이 서로 통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옳은 생각이 옳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의연하다고 한다. 의연함이란 겉과 속이 다름이 없음을 말한다. 비굴하거나 야하거나 교만을 떨면 의연할 수가 없다. 수작을 부리거나 꾸미는 것은 어딘가 힘이 있는 까닭이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다는 것은 결국 의연하지 못해서 얻어지는 탈인 셈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는가. 해야 할 일을 두고 머뭇거리지 말 것이며 허물이 있으면 서슴없이 밝혀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밝고 맑고 시원하다. 이렇게 상쾌한 몸가짐을 의(義)라고 한다. 의(義)란 옳음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일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 같은 것이다.

바랄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다면 꾸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만족한다. 체면을 따지고 신분을 따지면서 걸맞아야 한다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꾸며서 표를 내려는 것은 티를 내는 짓에 불과하다. 티를 내면 탈을 내게 마련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지 않은가.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 일이 뒤따라온다는 것은 좋은 일을 너무 앞세워 티를 내는 탓으로 탈이 생기는 법이다. 꾸미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숨기는 것이다. 왜 숨기려고 하는가? 나쁜 것 인줄 알면서도 좋은 것처럼 둔갑시키려고 할 때 일어난다.

그러면 거짓을 짓게 되고 거짓은 다른 거짓을 불러오고야 만다. 거짓이란 때는 밀면 밀수록 더욱 불어난다. 이는 마치 부스럼은 만질수록 덧나는 것과 같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경우를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꾸미지 말아야 한다. 꾸미지 말라는 것은 자연과 같다. 있는 그대로일 뿐 더하지 말 것이며 보태지 말 것이다.

나무는 잇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산다. 뿌리를 내린 자리가 비옥하다고 우쭐거리지 않고 박하다고 짜증을 내지 않는다. 바위 틈새에서 사는 찌들린 소나무가 살진 땅에서 사는 낙락장송을 탐하지 않는다. 명당을 찾아 이사를 하는 사람과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만족하면 질박(質朴)하다. 그러한 질박(質朴)을 우리는 목(木)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은 선(善)하고 어질(仁)다 라고 한다. 꾸미지 말라. 꾸미면 거짓이고 거짓은 잔재주를 부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위선이다. 위선은 사랑할 줄을 모르고 사랑을 이용하여 뭉개려고 한다. 그러니 꾸밈이 없는 목(木)은 명리학(命理學)에서 인(仁)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하는 말이 비단결처럼 고우면 의심스럽다고 하기도 하고 입이 청산유수같이 말을 잘하면 믿기가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거짓말 치고 험하게 나오는 법이 없고 언제나 달콤하게 소곤거린다. 상대방을 솔깃하게 해서 속이려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이 잦아지는 법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말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낭비하다 보면 말은 신용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사람이 천(賤)해지고 만다. 속담에 짓는 개는 물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말만 덩그렇게 앞세울 뿐 하는 일이나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속담이다. 빛 좋은 말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속이 텅 빈 것이다. 말로써 사람을 속이지 말라. 해야 할 말만하고 하는 말이 사랑함에 가깝다면 미소로 충분하지 않는가!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