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일의 겨울방학이 끝났는데 개학 첫 날 폭설이 내렸다. 학교버스 운전기사에게 전화해 학생들 태우러 갈 때 나도 태워가라고 했다.

우리 학교 통학구역 중 제일 먼 곳이 여천이다. 그곳에 가려면 큰 고개를 하나 지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눈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았다. 마침 그곳에서 학교 다니는 아동의 보호자가 다른 차도 넘어다니지 못하니 학교버스도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왔다. 오늘 못하는 수업은 다른 날 보충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천을 포기하고 도담삼봉으로 학생 3명을 태우러 갔다. 흩날리는 눈 속에 강 건너에서 나룻배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물가물 보였다. 단양 제1의 명승지인 도담삼봉도 이들에겐 그저 건너다니기 어려운, 강물 위 거대한 암초였다.꼭 양질의 교육으로 통학의 어려움에 보답하리라 생각했다.

다시 성신화학 사택에 사는 학생 3명을 태우러 비탈길을 올라갔다. 빨리 탄력을 붙이지 않으면 지날 수 없어 액셀레이터를 세게 밟으니 차가 좌우로 왔다갔다 미끄러지며 겨우 올라간다. 계속 내리는 눈 속에서 꾸벅 인사하며 버스에 타는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승차를 도왔다.


-양질의 교육 실시 약속


개학식을 마치고 전교생이 눈사람 만들기 대회를 하도록 했다. 마침 눈이 습기를 많이 머금어 잘 뭉쳐졌고 날씨도 포근했다. 어느 반이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까 독려하며 협동심을 길러주고 방학 내내 웅크렸던 기지개를 펴라는 뜻이었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1시간 내내 왁자지껄 떠들면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예쁜 눈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일어섰다. 그들의 꿈도 같이 일어설 것이다. 친구와 힘을 합해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고 쉬웠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의 청아한 웃음소리와 환한 얼굴, 장난기 가득한 몸짓을 바라보며 행복했다. 내가 담임교사를 할 때도 눈만 오면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저렇게 했었지 하는 회상에 잠겼다. 이렇게 눈이 와 아이들이 들뜨면 담임인 나도 덩달아 들떠서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다녔다. 눈싸움을 하다가 눈에 맞아 엉엉 울던 여자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늘 이 흰 눈을 바라보며 그때를 생각하고 있을까?


-학생을 가르쳐야 진정한 교사


아이들 가르치기가 힘들고 어려워도 한 해가 마무리 되면 저 녀석들 인생의 아주 소중한 1년을 책임졌다는 한 아름 가득한 수확의 기쁨을 맛봤는데 교장이 되니 그런 기쁨이없고 교사 때보다 크게 행복하지 않다.

학생을 가르쳐야 진정한 교사다. 교사는 학생이 있을 때 행복하다. 학생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그들의 티 없는 꿈을 일깨워주고 키워주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가슴 떨리는 기쁨을 느끼는 직업이 어디 흔한가? 매일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렇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우리에겐 학생이 있다. 그래서 당당하고 보람 있고 더 행복한 것이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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