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보면 “과외공부”라는 기획기사가 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기사를 본 독자들은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학과공부를 강압적으로 주입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며 또 어린이들을 채찍질하고 있는가를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대로 좋은가?”라는 의문도 일어났을 것이다. 실상 이런 일은 유태의 가정이나 유태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지식의 습득과 진리의 탐구를 일정한 젊은 시절에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계속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공부는 마라톤 경주와 같은 것이어서 처음에 너무 빨리 달리면 금방 지쳐버리고 중도에서 기권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다. 요즘 교육계에서는 평생교육(平生敎育)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공부는 일생동안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어릴 때 충분히 놀도록 하는 것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육적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논다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야외에 놀러 나갔다고 생각해보자. 도시의 혼탁한 공기 속에서 협소하고 복잡한 콘크리트의 구조물 속에서 살던 어린이면 무엇보다도 신선한 공기와 눈에 시원한 자연에 매혹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어가며 놀 것이다.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구경한 다음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올 것이다. 얼핏 보기에 하루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또 부모의 입장에서는 즐겁다기보다도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루의 경험이지만 어린이에게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부모가 놀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구나”하게 되는 수가 많다.
놀이는 어린이에게 중요한 학습경험을 제공해준다. 어린이가 논다는 것은 어른이 놀고 지내는 것과는 다르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노는 것이 바로 배움이다. 생전 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 구경을 가는 두메산골 어린이의 표정에서 그들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순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반대로 대도시의 소음 속에서 자란 어린이가 처음으로 시골에 나들이를 할 때 그들의 표정에서도 꼭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거듭되지만 어린이가 논다는 것은 학과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 뿐 다른 종류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릴 때에 마음껏 놀게 한다는 것은 그 시기에 배워야 할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놀이를 통해서 어린이들은 평소의 좌절된 감정을 분출시키는 속 시원한 경험을 맛보게도 되고 여러 가지 사회생활에 필요한 규율도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배우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기능도 몸에 익히게 마련이다.
어릴 때 지나치게 학교공부만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바른 인격형성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충분히 놀면서 학과 공부 아닌 다른 종류의 많은 것을 공부하게 하고 일생동안 계속해야 할 면학의 길로 서서히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교육은 어머니만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머니만이 가정교육의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의 공동 작업으로 성취되는 것이며 특히 아버지의 권위를 통한 교육을 필요로 할 경우가 많다. 더욱이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교육 방식인 엄부자모라는 점에서 볼 때 아버지는 어린이 교육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아버지의 엄한 면이 있어야 어머니의 자애스러운 보살핌은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지 못하게 되면 어머니가 이중역할을 담당해야 되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부터 배우지 못하고 버릇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호래자식”이라고 한 것 같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은 으레 버릇이 없다는 오랜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버지의 교육적 기능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자에 우리나라 가정에서 아버지의 교육적인 권위가 상실된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되었다는 말은 적합한 표현이 아니고 부권부재(父權不在)의 현상이라고 하는 전문가도 있다. 가정에서 어린이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상당히 많은 가정에서 부권이 건재하다는 것을 믿고 싶은 심정이다. 또 사실 그러하리라. 그렇지만 남성들의 사회생활이 더욱 바빠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가정에서 자녀와 접촉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도리밖에 없다. 어쩌다 저녁에 일찍 귀가해도 많은 사람들이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다. 오늘의 사회인이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 속에서 어린이들의 교육은 중요한 것이다. 어린이들의 교육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