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청동기(靑銅器)시대 초기에는 구리에 다른 광물을 섞지 아니한 순동을 그대로 두드려서 연모나 치레걸이를 만들다가, 차츰 주석·납이나 아연 등을 섞어서 단단한 청동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주석은 합금비율이 28%일 때가 구리의 경도를 가장 굳게 하며, 납은 주조한 다음 표면의 마감처리를 위하여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청동기에는 유동성을 좋게 하여, 주조하기 쉽게 하는 역할을 하는 아연이 포함되어 있어 새로운 합금기술을 개발해 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만든 청동거울의 성분분석결과 구리 42%, 주석 27%, 아연7~9%의 합금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표면이 곱고 매끄러우며 잘 비치도록 한 것이며, 도끼는 구리 41%, 주석 19%, 아연 25%를 합금하여 강도를 높였는데 합금기술을 지녔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과학기술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두꼭지청동잔무늬거울(多紐細文鏡)을 들 수 있다.

잔무늬거울은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삼각형과 동심원을 기본무늬로 하여 정밀하게 만들어지는데, 꼭지가 가운데에서 치우쳐2개가 있다는 점, 번개무늬 등 독특한 줄무늬가 있는 점, 거울 가장자리의 테두리 단면이 반원형인 점에서 중국거울과 다르다.
잔무늬 거울의 기하학적인 추상무늬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와 번개문늬 토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우리나라 역사의 일관된 흐름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 조형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보 141호인 두꼭지 청동잔무늬거울을 들 수 있다. 이 거울은 지름 21.2cm이며, 뒷면의 볼록한 둥근 테두리원 안 평면에 동심원을 기본 구도로 엇갈린 삼각형과 그 속을 채운 수많은 직선, 그리고 네 방위에 각각 두 개 씩 짝을 이루는 여덟 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약 1만3000개가 넘는 가는 새김줄이 0.3㎜간격으로 그어지고, 선과 골의 굵기는 약 0.22㎜, 골의 깊이는 0.07㎜ 정도이며 한 곳도 빈틈이 없이 절묘하게 시문 되었다.

이 거울은 밀납으로 만들고자하는 물건의 모형을 만들고 그 위를 고운 진흙으로 씌우고 열을 가하여 밀납을 녹여내 진흙 거푸집을 만드는 밀납주조공법 (蜜蠟鑄造工法)을 써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나 현재의 기술수준으로서도 이렇게 세밀한 무늬를 주물로서 부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

무늬가 간략한 기하무늬거울 중에는 납석에 거울 모양과 무늬를 새겨 만든 납석거푸집도 있지만 현대의 전문 도안사도 손으로는 그려내지도 못하는 이 거울의 무늬를 돌에 새겨 만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하튼 당시에 이 무늬를 새겨 넣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이것을 그린다고 해도 반듯이 써야하는 현대 도안기구 체제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개발되지 않았던 합금기술과 거푸집 등을 고안·발전시켜 그뒤시기의 쇠다루기 기술의 백미인 금속상감기술, 세계최고의 신라범종, 고려와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끊이지 않는 우수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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