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을 뒤로 하고 피반령, 수리티 재를 넘어 보은으로 가다보면 국도변에서 오동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5월이 깊어가니 어느새 보랏빛 종모양의 통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예전에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혼수를 대비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동은 성장이 빨라 10년 정도면 목재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뭇결이 곱고 습기·불에도 강해 가구를 만드는데 좋은 재료로 쓰인 것 같다. 교사 시절 모시던 교장선생님이 연만한 따님이 둘 있는데 장롱을 준비해 놓으려도 시집 갈 생각을 안한다고 애태우시더니 아들 장가든다는 청첩을 보내오셨다. 퇴임 후 자주 뵐 기회가 적어 바쁜 일을 접어두고 직접 가서 뵙고 축하도 해드리고 싶어 서둘러 새로 지은 식장으로 향했다.

인사를 드린 후 누가 어떤 주례사를 해줄까 살펴보는데 교장선생님이 무대 위로 올라가시는 것이다. 신랑 아버지라고 본인 소개를 하신 뒤 제일 먼저 며느리를 길러주신 사돈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어 신랑의 할아버지·할머니, 그러니까 교장선생님의 부모님을 소개해 올리며 뿌듯해하신다. 드디어 '오늘 결혼을 제일 걱정하며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사모님이라며 '사랑합니다'라고 만인 앞에서 고백하시는 것이다. 당연 축하객들이 큰 박수를 치며 색다른 결혼식 진행에 초롱초롱 수긍하며 집중하는 형세이다. 과연 아들의 결혼에 어떤 주례사를 준비하셨을까?

평소 성품대로 짧고 담담하게 한 마디로 '배려하며 살라'는 주문이다. 내외간, 양가 부모님, 친척, 나아가 직장 동료까지 늘 배려하는 삶을 살다보면 큰 문제 없다는 것이다. 그날 분위기는 신랑·신부가 쌓아온 스펙이나 직업 등이 초점이 아니었다. 바르게 성장해 원만히 한 가정을 이루게 된 두 젊은이의 책임있는 만남을 제 3자가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축하하며 성스럽게 대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아들의 주례로 손자의 혼인을 지켜보는 조부모님도 제2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되신 것이 오동꽃 진한 향내처럼 식장을 감돌고……. 식이 끝난 후 신랑측 가족 사진을 찍을때, 제일 먼저 신랑 조부모를 가운데 모시고 3대가 나란히 촬영하는데 아주 흐뭇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요즘 많은 부부들이 끝까지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갈라서는 일이 흔한데, 차마 아버지가 주례해주신 결혼을 함부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랑도 아버지가 하신 것처럼 자녀를 낳아 길러 그렇게 할 것이다. 그날 증인이 돼 준 일가 친척들도 가득 올라 '개구리, 올챙이'를 합창하며 기념사진을 찰칵, 보람있게 혼인잔치는 마무리됐다. 오동나무 열매는 끝이 뽀족하게 달걀모양으로 익어가는데 시월이 와서 두 조각으로 갈라지기 전 따님들의 혼사 소식도 들었으면 한다. 부모를 넘는 자식은 없다.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부모의 진정한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박종순 회인초 교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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