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숲 사이 망국의 가야금 선율 들리는 듯

신라 진흥왕 3대 악성 우륵 <br>제자 기르며 말년 보내던 곳 <br>임진왜란 전적지로도 유명 <br>문화·휴식공간 등 잘 갖춰져 <br>순절·노래비 추모시설 다채 <br>해마다 관광객들 발길 북적

[충청일보=조무주 대기자]충주 탄금대(彈琴臺)는 신라 진흥왕 때 3대 악성 중 한 분인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강변의 절벽이 아름답고 울창한 송림이 장관이다.

우륵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충주를 찾아 제자들에게 가무 음곡을 가르쳤다.

망국의 슬픔과 망향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탈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음곡에 취하여 떠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우륵의 비는 탄금정에서 대흥사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다.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고 하늘에는 구름이 떠있는 모습이 조각됐다.

탄금대는 신립 장군이 전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이곳에 임진왜란 당시 팔도순변사였던 신립 장군이 문경새재를 버리고 탄금대 강가에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다.

그러나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화살로 맞서 싸우니 싸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신립 장군과 8000 장졸이 모두 탄금대에서 전사했다.

탄금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야외음악당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탄금대 문화관 옆에 자리한 야외음악당은 푸른 잔디가 잘 가꾸어져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우륵문화제 등이 열리고 각종 글짓기 대회, 미술실기대회 등도 열린다.

반원형 무대가 예술적이며 높이가 지상 11m에 달해 규모가 크다.

야외음악당과 인접한 문화관은 1970년 11월에 완공됐다.

4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탄금대를 넉넉하게 지키고 있다.

2층 콘크리트로 세워진 문화관은 1층에 사무실이 있고 소회의실, 창고 등을 갖추고 있으며 관광객들을 위해 매점도 운영하고 있다.

2층 대회의실에는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탄금정(彈琴亭)은 누각형태의 정자다.

탄금대 열두대 가는 길목의 전망 좋은 곳에 있다.

탄금정의 1층은 2단 기단에 한 변의 길이가 7m의 정방형 위에, 다른 변의 길이가 80cm의 정방형 주초석을 놓고 사방 50cm크기의 사각기둥 4개를 놓아 누각을 만들었다.

이외 탄금대에는 신립장군 순절비, 우륵선생 추모비 등 각종 시설이 있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오고 있다.

탄금대 들어서면 단번에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비가 하나있다.

'탄금대 사연'을 노래한 탄금대노래비다.

충주를 대표하는 향토가요로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탄금대 사연은 국제로타리 3740지구 3지역 소속 7개 로타리클럽이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을 맞아 세웠다.

2005년 6월 제막식을 가졌으니 올해로 8년째가 된다.

탄금대 사연 노랫말은 이병환씨가 짓고 작곡은 백봉씨가 맡았다.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가고 물새만이 슬피우나.

인기가수 주현미씨의 구슬픈 목소리로 탄금대 사연이 불려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충주 출신의 권태응 선생 노래비 '감자꽃'도 여기에 세워졌다.

권태응 선생은 1918년 4월 충주 칠금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 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조도전대학에 진학하였으나 민족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입건되어 중퇴 당했다.

그는 항일 운동을 하면서 동시를 많이 썼는데 '고추밭', '율무', '옹달샘' 등이 있고 그 유명한 감자꽃이 가장 널리 불려진다.

자주꽃 핀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건 하얀감자/ 파보나마나 하얀감자.

일제가 창씨개명을 실시하자 이에대한 저항으로 이 동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처럼 탄금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어 앞으로도 충주의 명소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 탄금대는 가는곳마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인기다. © 편집부


▲ 탄금대사연은 이병환 작사, 백봉 작곡, 주현미 노래로 충주의 대표 가요다. 2005년 이 노래비가 탄금대에 세워졌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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