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97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기계가 고장 난 것은 아닐까? 칩을 바꿔 끼고 다시 혈당 체크를 했다. 역시 같은 숫자다. 내 생애 '눈 달리고 처음 보는 수치'였다. 숫자를 사진 찍어 가족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연달아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난 몇 년간, 가족력이라 어쩔 수 없다 생각하기도 했고, 당장 당뇨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도 아닌 듯해 그저 한 달에 한 번 동네 병원에서 한 달 치 약 받아다가 먹다 말다 하는 것으로 관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찜찜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몸에 나타나는 이상 증세가 자각되지 않아 병원에 갈 때만 당뇨 환자였다.

혈당이 400이 넘자 의사가 온갖 협박을 했지만 의지만 굳으면 병에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환상으로 나를 달랬다. 살다 보면 술도 마셔야 하고, 과로도 해야 하고, 맛있는 음식도 배부르게 먹어야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얘기하는 대로 먹고사느니 조금 일찍 죽더라도' 느끼고, 즐기며 사는 게 낫다'라는 판단이었다. 친정어머니가 개똥쑥을 삶아 팩에 담아 보내주셨고, 가시오가피 생산 공장을 인수한 지인이 개업 선물로 제품을 많이 보내주셨다. 둘째며느리는 혈당 체크기를 사 들고 집에 왔다. 몇 년간 약을 먹고도 떨어지지 않은 혈당이 내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나만 모르는 듯했다. 또 몸이 늘 피곤하고, 발가락에 생긴 종기가 좀처럼 낫지 않아 은근슬쩍 겁이 나기도 했다. 당뇨 환자는 평생 '거지 밥상'을 먹어야 한다는 막내아들 말이 떠오르고, TV 프로그램에 당뇨에 좋다는 음식이 나오면 솔깃했다. 몇 년간 의사가 내게 한 조언이 협박이 아님을 알면서도 귓등으로 흘려보냈던 말들이 하나씩 상기됐다. 내 몸이 오랜 당뇨로 인해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소식을 하기 시작했다. 현미와 콩을 잔뜩 넣은 거친 밥을 천천히 씹었다.

아침에 운동장에 나가 땀을 흘렸다. 비가 오거나 바쁜 일이 있으면 사무실 계단을 오르는 일로 운동을 대신한다. 당분간 술은 한잔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다행히 뿌리칠 수 없도록 술 권하던 사람들이 내 한 마디에 술잔을 거둬 고마울 뿐이다. 야간 강의를 거의 취소했다. 한 때, 서서 강의 하다가 잠꼬대까지 했던 살인적인 일정을 조정했다. 장거리 볼일이 있을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잠을 청한다. 덜커덩거리는 반복 음이 이제는 자장가다. 두어 달이 지났을 뿐이다. 보는 이들마다 혈색이 좋아졌다고 칭찬한다. 볼록 나왔던 윗배가 사라지니 동네 목욕탕에서도 인사를 받는다. 일주일에 두어 번 집에서 혈당 체크를 하며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수치가 점점 내려감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자신감 만 배다.

귀찮다는 생각 없이 '꾸지뽕' 뿌리를 삶아 보약처럼 마신다. 물을 마시는 일이 습관화되지 않아 어려워 강의할 때마다 한 병씩 담아가서 목도 축이고 당도 내린다. 이제 시작이다. 너무도 어렵게 생각했던 식이요법이 이제는 즐거움이다. 고기를 좋아하고 피자를 좋아하던 식습관이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때로 그런 음식들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앞으로 계속 조절할 계획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점점 더 가벼워지고 개운해지는 몸을 사랑한다. 당뇨가 있어서 시작한 생활태도로 인해 건강한 노후를 약속 받은 느낌이다. 그리해 나는 기분 좋게, 축복처럼 당뇨를 앓을것이다.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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