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논어(論語)에는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 것이며 예(禮)가 아닌 소리는 듣지도 말 것이고 예(禮)가 아닌 일은 하지도 말고 예(禮)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에는 나서지를 말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고 있고 이러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인간의 지혜의 손으로 만들어진 법(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겠지만 이러한 법(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예법(禮法)에 의존하였고 만약 예법(禮法)을 모든 사람들이 잘 지키고 보존하였다면 불편하고 구속적인 오늘날의 법(法)은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작은 실수는 너그러움으로 감싸줄 수 있는 믿음과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는 크고 작은 나라가 있고 선진, 후진국이라는 잘살고 못사는 경제의 차이를 두고 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문명(文明)의 개념은 인지(人智)가 발달하여 인간의 모든 생활이 풍요로워 진 것을 말하는 것이며 예(禮)는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될 참된 도리로서 어떠한 형태나 과학적인 지식이 가미된 것으로 종교적 이념이나 스스로 주입된 관습에서 다양한 참된 삶을 구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禮)는 미개한 방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느끼고 깨우치는 문명화된 방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말하자면 오늘의 첨단 과학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능이다. 예(禮)는 중요한 문화의 한 부분으로 우리의 생활양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대와 환경변화에도 변질되지 않아야 하고 언제나 나보다는 먼저 남을 존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진실 된 예(禮)는 얼마든지 남용한다고 해도 탈이 없다.

그러나 모든 예(禮)의 기본은 나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주거나 볼상스러운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90도로 구부려 인사를 하면서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한다면 이것은 예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희롱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으로서는 무슨 잘못이 있는지 하고 당황하게 될 것이며 또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고개만 까딱하고 성의 없는 인사로 지나치게 된다면 목례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예의를 표시하는 성의가 부족하고 목례를 받는 쪽에서도 약간은 서운한 구석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예(禮)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되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가 고마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예(禮)는 진실 됨이 담겨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예의도 건성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마지못해 하는 예의는 기본 바탕이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좋은 감정이 전달될 수 없으므로 서투른 예의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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