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꽃이 있지만 나는 코스모스를 참 좋아한다. 특히 그 꽃의 색깔이 맘에 쏙 든다. 흰색이면서 흰색이 아닌 듯하고 분홍색이면서 분홍색이 아닌 듯하며 붉은 색이면서 붉은 색이 아닌 듯한 그 꽃잎을 보면 금방 그 자태에 푹 빠져버리게 된다. 자기의 색깔을 내세우지 않는데도 그 고고한 품새를 보면 황홀할 지경이다. 보름달이 중천에 높이 떠 있는 밝은 밤 같기도 하고, 가을날 새벽에 불현듯 잠이 깨어 밖에 나올 때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한기 같기도 하며, 포근한 겨울 초저녁 가로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함박눈 같기도 하다. 아픈 이별을 겪고 밤새워 괴로워하다가 삶의 숭고함을 자각하고는 밝아오는 아침을 맞기 위해 힘들여 무릎을 세워 일어나는 핼쓱한 얼굴의 청년 같기도 하고, 힘든 30년 결혼생활을 나름대로 잘 마치곤 자녀들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빙긋이 미소 짓는 초로의 여인 얼굴 같기도 하다.


-고고한 품새

어린 시절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여덟 개 중 네 개를 하나 건너 하나씩 떼어내고는 공중 높이 던지면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오는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었다. 손으로는 높이 못 던지니 조금 높은 나무나 바위 위에서 던지며 친구와 누가 더 많이 돌면서 늦게 내려오나 경주하던 기억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러나 이 꽃잎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가을하늘을 닮아서다. 긴 무더위와 장마와 태풍을 이겨낸 가을하늘은 참으로 푸르고 높은데 그 색깔이 바로 흰색이면서 흰색이 아닌 듯하고 푸른색이면서 푸른색이 아닌 듯하여 코스모스와 기가 막히게 똑 같은 것이다. 코스모스는 그래서 가을하늘 아래에 있어야 코스모스다. 더러는 이상 기후로 인해 한 여름에도 보는 경우가 있으나 그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코스모스는 질서다

만물은 다 제자리에 있어야 어울린다. 지금의 세상을 광기의 시대라고 한다. 모두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나댄다. 세상 사는 기준이 없어지거나 희미해지는 바람에 제각기 자기 옳은 대로 살기 때문에 멋대로 돌아가고 있다. 도덕과 윤리와 양심이 없다. 법과 규칙을 막 어긴다. 어른들이 크게 날뛰니 아이들이 덩달아 따라 한다. 큰 소리 치면 이기고 삿대질 하면 이긴다. 꽹과리 치면 이기고 머리띠 두르면 이긴다. 하긴 자연도 제 철을 모르고 봄꽃이 여름에 피는 게 있고 여름꽃이 가을에 피기도 하며, 분명 여름꽃인데 한 겨울에 버젓이 피는 녀석도 있으니 말하면 무엇하리. 가을이 익어간다. 사람은 모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해를 정리하여 열매를 거두고 싶어 한다. 열매는 겸손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거둘 수 있다. 겸손과 정직과 성실은 질서를 지킬 때 가능하다. 코스모스는 질서란 뜻이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는 질서를 지켰기에 찬바람이 불면 이 꽃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이진영 매포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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