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옆 공원에 여름 내내 푸르둥둥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단풍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그런데 작년 늦가을에 정말 믿기 힘든 반전을 봤다. 겨울에 임박하자 나뭇잎이 새빨간 선홍색으로 변해 가을의 마지막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올해도 단풍 소식이 남행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 나무도 서서히 붉은 빛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지금 생각하면 붉은 단풍의 기운은 핏빛이었다. 그냥 피가 아니라 몇 차례의 겨울을 넘기며 겪었던 구제역과 AI 앞에 쓰러져간 주검에 대한 기억이었다. 때문에 붉은 단풍이 물드는 나의 가을은 그해 겨울에 입었던 정신적 외상(外傷)이 도지는 우환(憂患)의 계절이다.

겨울철새의 날개짓이 빨라지고 있다. 올 가을 들어 우리나라 보다 더 남쪽으로 가는 새는 이미 도착했고, 겨울 내내 머무는 철새도 11월 중이면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조류는 대략 400여종인데 철따라 오가는 새가 280종 정도라고 한다. 그 중 겨울철새가 110여 종에 달하며 가장 많을 때는 113만 마리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철새들의 허브공항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농업의 기계화로 들판에 낙곡(落穀)이 많고, 친환경 농사로 생태피라미드의 하층이 풍부한 철새의 낙원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로 철새의 동서간 비행권역은 더 넓어지고, 남북으로는 5000km가 넘는 거리를 종단한다고 하니 이 또한 놀랍다.


- 불안한 계절


하지만 철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지 꽤 여러 해가 됐다. 겨울의 공포로 변해버린 AI 때문이다. 국경 없이 넘나드는 철새를 따라 바이러스 이동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거기에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추울수록 활동이 왕성해지니 겨울은 이래저래 불안한 계절이다.

그러나 집에서 기르는 가금(家禽)은 AI를 예방하는 방법이 다 있다. 철새가 많은 곳에 출입을 삼가고, 외출 후에는 신발과 의복을 꼭 갈아입고 소독은 매일 해 준다. 축사주변은 항상 청소를 하고, 야생조류를 농장으로 불러들이는 잔반이나 사료를 운동장에 뿌려 주는 것을 금지하면 된다. 일반인도 해외 여행할 때는 가금류를 파는 재래시장이나 축산시설에 방문을 삼가면 크게 도움이 된다.


- 내 농장 내가 지키기


무임승차라고 있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 둔 이득에 슬쩍 묻어가는 사람들이다. 만약 AI가 한 농가라도 발생하면 전국이 요동치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발생농장의 피해야 당연하지만, 이웃 농장이 힘들어지고, 지역 상권이 마비되고, 안 써도 되는 국가 예산이 불가피하게 들어가니 막대한 피해를 남긴다.


만약 '나 혼자는 괜찮겠지'하고 무임승차를 생각하는 농가가 있다면, 이제 내 농장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의 변화가 꼭 필요할 때다. 11년째 AI 없는 충북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올 겨울에는 한 사람도 무임승차 없이 '내 농장 내가 지키기 운동'에 모두 동참해 주길 바래본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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