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갑자기 찾아오는 추위는 감당하기 어렵다. 차라리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이라면 적응할 준비나 하지, 예기치 않게 찾아온 11월의 단풍 추위는 다르다. 비록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만 미처 닫지 못한 모공으로 파고드는 냉기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 있다. 올 해도 늦가을 즈음에 대설특보까지 내린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간 영하의 기온과 강풍이 강짜를 부렸다. 무에 그리 심통이 나서 심술을 부렸을까 했는데 다행히 어제부터 날씨가 풀렸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베란다까지 들어온 햇살을 맞으며 따스한 휴일의 여유를 즐겼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이동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슨 연락일까? 광고일까? 하고 문자를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 P직원의 부고였다. 얼굴에 늘 웃음이 떠나지 않고 당당한 자신감이 넘치던 직원이었는데 이게 무슨 황망한 소식인가 싶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해 보진 않았지만 보고 들은 얘기만으로도 그녀는 늘 씩씩하고 활기찬 동료였다. 넘치는 긍정의 에너지가 다른 직원에게 파급되어 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늘 광이 나는 능력 있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밝은 모습 반대편에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었다. 길지 않은 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 반은 공직생활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의 병을 얻기 전부터 비슷한 싸움은 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만만치 않은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는 웃음으로 묻었기에 몰랐지 않았을까. 그녀와 맺은 짧은 인연도 그렇지만 핸드폰에 단 두 줄로 남긴 작별 소식이 삶을 더 허허롭게 만든다. 집을 나섰다. 오전의 따사로움과 달리 바람이 일고, 푸르던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가득 채워졌다. 해지는 황혼인지 대낮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마음을 초겨울의 날씨가 대신하고 있다. 플라타너스 잎들이 쉼 없이 낙엽이 되어 맴돌다 길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거리를 이리 저리 휩쓸리다 마침내 바람이 머물지 않는 구석진 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한 여름 정열을 받쳐 누리던 무성한 가로수의 영화가 다 부질없었다는 듯 몸체에서 이탈하여 관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도 이제 바람이 없는 편안한 곳에 자리 잡았을까? 지난 주 산행을 하다 내려오는 길에 편백나무 숲을 걸었다. 소문에 듣자니 P도 어느 편백나무 숲에서 휴양한다고 들었다. 밝은 모습으로 건강하게 돌아올 줄 알았는데, 11월의 추위처럼 갑자기 찾아 온 이별소식은 참 아프다. 행우문학회에 잠시 머물며 남긴 그녀의 글에서 지나간 삶 한 모퉁이를 되돌아본다.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좋은 건 좋은 것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못한 것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들의 삶에 여유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지 싶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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