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신기전의 발사시험
15세기의 최고 발사체 위용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의 발사성공을 시작으로 최근 우리 기술로 지구관측 위성인 아리랑위성, ksr-iii 액체추진 과학로켓 등을 개발한 바 있다.

우리는 흔히 로켓의 시초를 19세기 초 2차대전 때의 탄도미사일인 폰 브라운 박사의 v-2로켓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로켓으로는 1232년 중국 금나라에서 처음 불화살이 등장하며, 두번째는 1250년 아라비아에서, 세번째는 1379년 이탈리아에서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들은 있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실물이나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복원이 불가능하다.

네번째의 로켓은 고려말(1377년)에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18가지의 화약무기를 연구개발하면서 1387년 최무선이 만든 주화(走火)라는 로켓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세종(1448년)때는 더욱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2~3배 성능이 뛰어난 신기전(神機箭)을 만들었다. 성종 임금(1474년) 때 간행된 무기서인『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國朝五禮序例 兵器圖說)』에는 '신기전'이라는 로켓 추진식 화살이 설계도와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 설계도라고 1983년 세계우주항공학회(iaf)가 공인했다.

이 설계도에 따르면 300여개나 되는 화차의 부분품과 함께 리(釐)라는 0.3mm에 해당하는 작은 단위까지 사용함으로써 세종때의 수준 높은 정밀과학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때 대신기전(大神機箭)을 개발해 내는데 전체길이가 5.5m로 2km정도 날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신기전은 영국의 콩그레브(william congreve)가 1805년에 만든 6파운더(pounder)로켓(4.3m)보다 크고 360여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18세기 이전의 로켓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켓이다.

이러한 신기전의 과학적 원리를 보면, 먼저 대나무로 제작한 화살대 맨 윗부분에 한지로 만든 화약통(火藥筒)이 달려있고, 화약통속에는 화약이 들어 있으며, 화약통의 윗부분에는 폭탄인 발화통을 올려놓았다.

또한 화약통의 아랫부분에는 분사구멍(nozzle)이 뚫려있다. 추진제인 약통속의 화약에 도화선을 이용하여 불을 붙이면 도화선이 타들어가면서 화약에 불이 붙어 연소가스를 만들고 이 연소되면서 분출되는 가스의 추진력으로 화살이 날아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화약통 윗면과 발화통 아랫면에 구멍을 뚫은 뒤 도화선을 연결하여 신기전이 목표 지점에 도달했을 때, 자동적으로 폭발하도록 설계하였다.

약통의 아래에 있는 분사구멍을 로켓학 용어로 노즐(nozzle)이라 하는데 이것의 크기는 아주 중요하다.

크기가 작으면 연소가스가 밖으로 미처 다 빠져 나가지 못해 커지는 압력으로 약통 자체가 터지게 되는데 이것은 폭탄과 같은 원리이다. 반대로 분사구멍의 크기가 너무 크면 연소가스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져서 로켓이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신기전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발사대가 필요했다.

지금의 로켓 발사대와 같은 원리인 화차(火車)가 조선 태종 9년(1409년) 처음 만들어지고 그 40년 뒤인 문종때는 수레 위에 발사대를 만들어 신기전 100개, 혹은 사전총통 50개를 설치하고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는 이동식 다연장 로켓무기를 만들어 내었다.

문종 임금 때 개량된 이 수레 모양의 화차는 평상시에는 물건을 운반하는 생활도구로 사용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신기전을 띄우는 발사대로 기능이 바뀌었다.

특히 화차는 신기전의 발사각도를 0° - 43°까지 자유롭게 조절하여 사정거리를 조절할 수 있도록 문종대왕이 직접 설계한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발사틀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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