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이거나 타의이거나 막론하고 씨앗이라면 한 번은 땅에 떨어져 묻힌다. 그래도 땅에 떨어져 묻히는 씨앗은 다행이다. 돌이거나, 나뭇등걸이거나, 진흙에 떨어진 씨앗도 있으니 말이다. 바위 틈에서 구불구불 자란 오래된 소나무를 보면 그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경이롭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가 메리바라 수석 부회장을 차기 CEO로 내정했다. 105년 GM 역사의 첫 여성 CEO다. 그가 여성이어서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18살 학생 신분으로 GM 인스티튜트(현 케터링대학)에서 플랜트 엔지니어로 공장 인턴직을 시작, 33년간 GM에서만 근무해왔다. 그 뿐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또한 폰티악 생산 라인에서 39년 재직했다. 대학에서 취업 관련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의 눈높이가 상당함을 실감한다. 현장 인턴직으로 나가기를 꺼리며, 작업복을 입고 생산라인에서 근무하겠다는 학생은 거의 없다, 지방대학생의 취업서류 작성도 보면 일단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목표를 두고 준비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목표이다 보니 처음부터 정교하게 준비해야 하는 구직서류가 힘을 잃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가야 할 회사를 정하고 그 회사에 대해 오랜 기간 정보를 수집하며 자신의 역량을 그 회사가 원하는 자격에 맞춰 준비해도 목표에 도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대학교 3·4학년들조차 자신이 어느 회사에 들어가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 단지 전공 방면으로 나가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진 학생들이 다수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완성차업체 뿐 아니라 초일류 기술 수준을 지닌 부품업체도 상당하다. 대기업 못지 않은 기술력과 전망을 지닌 중소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성장 기회가 있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33년간 근속하고 그 회사의 최고 CEO가 됨은 모든 직장인의 꿈일 것이다. 39년간 재직한 아버지, 18세에 출발한 직장에서 성취를 이룬 메리바라를 보니 뿌리 깊은 나무가 연상된다. 어느 곳에 뿌려졌든 그 자리를 터전으로 삼고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 수십 년을 지탱해온 경이적인 힘에 가슴이 뭉클하다. 가장 하찮다고 생각한 일부터 성취하는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대기업에만 도전하느라 스펙을 쌓기 위해 취업준비학원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최고가 되고 싶다면 그 분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자리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지. 당장은 알 수 없다.

그 자리에서 어떤 꽃이 피어날지.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선지자가 보여준 역사가 있다. 누군가 역경을 딛고 이뤄낸 수많은 경험이 있다. 그 공식에 나를 대입시켜보는 것이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한 사람의 성공적 스토리는 또 다른 사람에게 꿈이 되고 목표가 된다. 자동차업계에서 작업복을 입고 언 손을 부비며 일하는 어떤 젊은이의 꿈이 30년 후 메리바라처럼 피어나는 경험 을 또 한 번 얻고 싶다.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