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맏상주여." 어릴 때 잔칫집에 와서 배불리 음식을 얻어먹고 가는 나그네가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제주지사 사무실 계약 기간이 작년 12월 말 만료됐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자금계획에 맞는 사무실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정보지를 보고 직원들이 찾아낸 예정지를 팩스나 카톡으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찾아봤지만 결국 약속한 날짜에 사무실을 비워주지 못했다. 연말이 끼어 운신하기도 어려웠지만 연초에 내려갈 계획이 있어 며칠 뭉그적거리다가 사무실 주인에게 대단한 결례를 하게 됐다. 길에 나 앉더라도 사무실을 우선 비워줘야겠다는 다부진 마음으로 제주에 내려갔다. 이사까지 일주일의 시간을 두고 출발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임대료이고 두 번째는 고용노동부와의 거리, 세 번째는 우리 회사에 오는 고객들의 편리성이었다.

우리 회사는 불특정 다수가 방문하는 업종이 아니고 고용지원센터에서 지정한 내담자들이 안내받아 상담하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근처에 유명한 장소나 빌딩이 있어 위치 설명이 쉬운 곳이어야 한다. 우선 현지인들에게 제주지역에서 빈 사무실이 많은 곳, 그리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곳을 수소문하니 지역이 정해졌다. 옛날 관청이었던 관덕정 근처를 기점으로 사방의 길을 샅샅이 훑어갔다. 우리가 찾는 규모의 사무실이 있을법한 모든 상가를 찾아 임대 여부를 물었고, 그 자리에서 집주인과 연결해주는 친절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손님이 기다리는데도 전화번호부 찾아 전화해주시던 약사님, 빈 건물을 기웃거리는 우리에게 건물 소유주를 알려주시던 행인, 근처 빈 건물을 알려주고 직접 안내까지 해주시던 사장님, 구두를 닦다 말고 집주인과 통화해 3층까지 올라가 건물을 보여주시던 구두수선집 아저씨, 은행건물이 비었음을 알려주신 동네 이발소 아저씨 등 많은 분이 그날 하루 일정에 동참해 주셨다.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먼지 묻은 창틀 너머로 빈 사무실도 까치발로 살펴보고, 우리가 원하는 규모와 맞는지 줄자로 재가며 종일 발품을 팔았다. 두어 군데 마음에 두고 해가 뉘엿한 오르막을 오르다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건물을 두드렸다. 마침 나오시는 건물주와 마주치게 돼 빈 사무실 여부를 여쭈니 바로 앞 건물을 안내해 주셨다. 직원들이 한 달 이상 눈·비 맞아가며 찾았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꼬박 이틀을 돌아다니며 찾았던 사무실이 마지막 순간 나타났다.

제주에서 유명한 칼 호텔 맞은편, 고용지원센터와 걸어서 5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건물주와 통화를 시도했는데 너무나 시원시원하게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임대료나 이사 날짜 등을 승인해 주셨다. 비어있는 데다 인테리어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건물이다. 맨발로 물청소 하고 바닥에 세제를 뿌려가며 수세미로 문질렀다.

겉옷을 훌훌 벗고도 콧잔등에 땀이 났다. 허리가 뻐근하게 중노동을 하고 근처 돼지 갈빗집에서 다리를 뻗었다.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목에 넘겼다. 따끈한 방바닥에서부터 후루루 취기가 올라오며 한없이 기분 좋았다. 3개월 동안 근심했던 일이 3일 만에 막을 내렸다.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기꺼이 발품을 팔아 준 내 다리 '맏상주'를 위로했다.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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