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박광호ㆍ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 박광호 ㆍ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따스한 봄날 대학 강의실의 한 풍경. 교수가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다. 꼬박꼬박 강의에 빠지지 않는 일부 '범생'(모범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이름을 불러도 좋고 안 불러도 그만이다.

몇몇은 아예 화창한 봄 기운을 즐기려고 학교를 벗어났다. 이 때만큼은 부모님이 허리가 휘도록 일 해 마련해 준 등록금이 비싸다는 걸 깜빡 잊는다.

그래도 조금은 찜찜한 지 가까운 친구에게 교수가 출석 확인할 때 대신 대답 해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다.

이윽고 출석 확인이 시작된다. 그런데 봄기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친구만 믿고 좋아라 나간 학생의 이름이 불리어지는 순간 2~3곳에서 동시에"예" 소리가 나온다.

친구를 믿고 나간 당사자가 미심쩍은 마음에 돌다리도 두드린 뒤 건너는 마음으로 또 다른 친구에게 부탁한 결과다.

학생들은 키득거리고 교수는 이런 일을 한 두번 겪는게 아니라는 듯 모른 척 넘어가주기도 한다.

왠만한 사람이면 한 번씩은 부탁했고, 부탁 받았던 대학 시절 잊을 수 없는 '대출'(대리출석) 의 추억이다.

공직사회 '대출' 유행

공직사회에서도 '대출'이 유행이란다. 그렇지만 공무원의 '대출'은 대학생의 그것과는 다르다. 대학생들의 '대출'이 팔팔한 나이 때 하나의 객기였다면 공무원의 그것은 세금 빼먹기다.

일 하지 않은 채 근무했다고 속여 초과 근무수당을 타 먹는건데 자신을 믿고 세금 낸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나 다름없다.

수법도 공복(公僕)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기상천외하다. 체육복 차림으로 와서 꾹 찍고 가고 애들 데리고 와서 아무 거리낌 없이 찍고 간다.

거나하게 한 잔 한 얼굴로 찍고 다시 '향락의 현장'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자연 공무원 사이에서도 문제가 되고 이를 입소문으로 들은 지역민의 심기 또한 편할 리 없다.

이를 확인해주는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충남도가 3월 초에 근무실태를 점검한 결과 휴일에 일도 하지 않으면서 출근도장 찍은 사람 32명을 잡아냈다. 곧바로 타 먹은 수당 3일치를 회수했다.

공무원들의 '세금 빼먹기'

앞으로 적발될 경우 해당 되는 달의 수당 모두를 걷워 들이고 그러고도 걸리면 6개월간 수당 지급 중단과 함께 문책인사까지 하기로 했다.

충남 천안에서는 이 때문에 희한한 기계까지 설치키로 했다. 다른 사람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초과근무 확인 기계에 대신 손가락을 찍는 걸 막기위해 정맥인식기까지 도입한다고 하는데 들어가는 돈만 1억 9380만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세금을 떼 먹는 사람을 막기 위해 아까운 세금이 쓰여지는 것이다.

직분에 맞는 처신 '절실'

요즘 처럼 취업하기 힘들고 기껏 일자리를 잡았어도 신분이 불안한 때 공무원은 '신(神)이 내린 직장'이라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어떤 자리는 한 술 더 떠 '신(神)도 모르는 자리'라고 한다.

우리의 공무원들이 그저 단순한 직장이 아닌 국민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일 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그에 걸맞는 처신을 해주길 세금 내는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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