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서 원하는 마음이 많고 원망하는 마음이 많으며 소원하는 일들이 많고 마음이 많아지면 약속 또한 많아지는 것이다. 또 허황되고 부실한 가운데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하여 말이 많아지는 것처럼 스스로가 소원하고 원망하는 마음들이 마음에서 녹아내릴 때에는 그것으로 약속을 남발하게 된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 저녁의 일조차 헤아릴 수가 없는 현실을 사는 것이 사람의 일이건 만은 일 년이나 십년 후의 일들을 함부로 약속한다는 것은 답답함을 지나서 허망함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서도 스치듯 지나가는 말로 약속을 많이 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성실한 생활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매우 신비스러운 것이고 신비로운 것에서도 매우 엄중한 것이며 엄중한 가운데에서도 매우 무서운 것이고 무서운 것 가운데에서도 매우 냉혹한 것이 말이다. 더구나 말 가운데에서도 약속은 타인의 마음까지도 변화를 꾀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엄중한 것이 된다. 그래서 말을 할 때에는 이것으로 이것을 이렇게 약속을 하고 그것으로 그것을 그렇게 지켜 나갈 수가 없다면 약속을 하지 않음이 좋다. 설혹 약속을 하는 사람이 이 만큼을 약속을 하였더라도 상대방은 이 만큼에서 또 이 만큼을 더하여 믿으려 하고 약속을 하는 사람이 그때쯤이라고 약속을 하였더라도 상대방은 반드시 그때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또 하나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변화가 많고 헤아릴 수가 없으며 오묘하기가 그지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너무나도 애처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약속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헤아릴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약속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오묘하기가 그지없음을 알면서도 약속을 하여야한다. 그리고 현실은 복잡하고 오묘하며 변화가 많은데 약속은 단순하고 정확하며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약속의 또 다른 특성이다. 그래서 현실을 지혜롭게 산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약속을 지혜롭게 한다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약속이 많으면 지키기가 어렵고 약속이 없으면 현실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을 할 때에는 스스로가 그 약속의 진위를 먼저 생각을 하여야 하고 설혹 지킬 수가 있는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지키지 못할 상황까지도 생각을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일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은 “나”뿐 만이 아니라 너와 나 그리고 모두에게 언제라도 발생을 할 수가 있는 돌출 상황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키지 못할 돌출 상황에서 상대방의 태도가 된다.

즉 문제를 제공하는 것은 “나”이지만 문제의 해결은 상대방에게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실마리는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소의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말에 대한 신임도가 상대방에게 문제 해결에 대한 근본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것을 근간으로 상대방은 문제해결을 위한 판단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누구에게나 돌출상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전제조건이 되겠지만 그것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인정을 하지 않을 것이냐는 상대방의 권한이 되고 그것을 인정을 받을 수가 있느냐와 없느냐는 나의 선택이 된다.


예컨대 자신의 생활에서 거짓된 약속이 적고 성실함을 보이는 사람은 어떤 돌출 상황에서 그 해명이 상대방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가 있으므로 자신의 선택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에서 믿음을 일으키는 시초가 되는 것은 자신의 고요한 모습이 있을 때에 상대방은 편안함을 얻고 상대방이 편안한 마음을 얻었을 때에 “믿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과 성냄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마음이 편안함을 유지하여 아름다운 사람의 말에는 향기로움이 있고 향기로운 사람의 말에서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돌출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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