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길 기다린지 꼭 한 달이 됐다. 꽃이 핀다고 해서 다 해결된다는 확신이 없음에도 이만큼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가끔 봄이 오면 몹쓸 AI도 없어질 것이라며 위로를 해 줬다. 위로인 줄 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치른 노고보다 운명에 맡기면 해결될 것을 공연히 고생한다는 뜻으로 들려 듣기에 영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피길 기다린 이유는 곧 끝날 것 같았던 AI가 다시 살아나 한 달이나 더 연장된 탓이었다. '오리 먹고 십리 날자'던 희망 메시지에 화답은 커녕 기존 방역대를 벗어나 영토를 넓히던 절망의 시기였다. 다행히 새로 발생된 곳은 방역상 입지가 좋았고, 초기 감시망에 놓여있어 기세를 넓히지 못했지만 꺼지지 않은 잔불처럼 남아 불안하던 즈음에 드디어 꽃이 피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나간 두 달은 혼돈의 시간이었다. 피와 눈물이 마르고 직업적 가치와 심리적 혼란기였다. 거기에다 하루 3억 원이라는 산술적 혈세가 동원됐기에 마음의 고통은 더욱 심하고 조급해졌다.


만약 꽃이 피는 봄이 오지 않는다면 더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혈세도 무한정 쏟아 부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꽃이 얼른 펴야 산다는 생각을 스스로 세뇌시켰다.


마침내 도청 정원 뒷편의 목련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나 했더니 어느새 활짝 폈다. 무심천에 벚꽃소식이 들리고, 우암산 기슭에 개나리와 진달래꽃이 노랗고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꽃이 피는 효과를 보는 것일까? 곳곳에서 들려오던 AI 발생소식도 점점 뜸해지면서 살처분 현장이 하나 둘 줄고, 생소한 현장에 동원되던 동료들의 노고도 덜고 농가에서도 삶의 터전을 다시 손질해 재입식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시작은 뿌리이겠으나 종족 보전의 시작은 꽃이 아니겠나 싶다. 꽃이 피고나면 햇볕과 비와 바람, 곤충의 도움을 받아 씨를 맺고 영글게 된다. 누군가의 지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의 법칙을 따라 이행되고 있다. 그러기에 꽃이 피는 한 씨는 마르지 않는 것이 이치가 아닐까.


그동안 AI로 피해를 입은 농가와 정신적 상처를 입은 방역요원들이 눈에 밟힌다. 오죽하면 '오리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가축을 땅에 묻어야 했던 축산인에게 위로와 결단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그들에게도 이제 도민들이 햇볕과 비와 바람이 돼 다시 꽃 피우고 열매를 맺어 융성하게 일어나길 기원해 본다. AI 현장에 접근조차 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임에도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살처분을 대집행하고 방역에 도움을 준 공무원과 군인, 자원봉사자에게도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자연계의 조화 속에 계절이 바뀌고 봄꽃들의 향연이 지천으로 한창이다. 하지만 내 4월의 진정한 꽃은 AI 수습에 헌신적으로 희생을 자처하신 분들로 기억한다. 그 꽃들이 활짝 폈기에 비로소 살았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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