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1970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바른 맘 고운 꿈'을 길러주기 위해 초등교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충북글짓기지도회를 창립했다. 해마다 총회가 열리는데 마침 올해는 새로운 임원진이 출범하는 계기를 맞았다. 학교장 주축에서 젊고 유능한 교감, 교사들 중심으로 새로운 임원을 조직하고 창립 45주년 기념행사를 더욱 알차고 회원들간의 유대도 다지는 등 힘찬 출발을 다짐한 것이다.

행사운영과 상품 구입에 소요되는 경비도 누가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자진 회비로 운영해왔고 고문의 장학금 기탁까지 대단한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충북글짓기지도회도 근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단의 선배들이 일구어 온 헌신과 봉사의 길을 멈춤없이 이어가고, 세상이 급박할수록 어린이들에게 바른 마음과 꿈은 키워줘야 하기에 청주시를 비롯 11개 시·군에는 젊은 학교장으로 지부장을 위촉한 바 있다.

우리 지도회에서 펴는 사업은 크게 네분야다. 첫 행사는 어린이날 기념 도내어린이 동시화전 개최, 둘째는 한글날 기념 백일장, 셋째는 학교 신문·문집 전시회, 넷째는 유치원 동화구연대회 등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사업들이다. 제일 먼저 열리는 동시화전은 각 학교에서 5명의 어린이가 온 가족의 마음과 끼를 모아 시화를 만들고 대회장에 전시해 축하를 받는 행사다.


올해는 어떤 어린이가 고운 동시를 지어 출품할까 기대하고 있는데 진도 바다에서 너무 엄청난 일이 발생, 동시화전을 열지 않는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45개 성상을 넘으며 한번도 거르지 않던 행사인데 진도의 슬픔과 재난의 심각성에 시시각각 비통함이 생활 속으로 스며오고 있다.


살얼음판 걷듯 1주일을 닫는 금요일! 중간 활동 시간에 전교생은 물론 전 교직원을 운동장으로 모이게 했다. 운동기구 등이 안전한지 늘 염두에 두고 있다가 미룰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어린이들은 운동장의 돌을 줍고 어른들은 조를 짜서 여러 놀이 기구의 안전도를 점검했다.


이제 나라 곳곳에서 작은 희생이라도 없어야 하기엡아직도 110여명이 험한 바닷물 속에 있어 온 국민이 사투를 벌이고 있으니 교정에 활짝 핀 영산홍도 꽃잔디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피맺힌 마음같아 편히 바라볼 수 없다. 어린이들, 교직원 모두 일동 묵념을 올리면서 두려움과 슬픔에 떨고 있는 학생들이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지난 주일에도 정말 슬프고 기막힌 일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됐다. 필자가 다니는 주교좌 성당에 항상 미소 지으며 말수가 적고 조용하며 신심이 깊은 신사분이 계신데 그 분의 아드님이 바로 단원고 교사로 수학여행 중에 학생을 구하고 하늘로 간 N선생님인 것이다. N선생님은 영어 교사로 목소리도 멋있고 수준별 수업을 잘 안내해 학생들의 인기투표에서 늘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부활절 미사 후 오후 2시에 장례미사가 집전됐는데 수많은 시민들이 와서 고인을 위해 기도하며 아픔을 함께 했다. 결혼도 안한 외아드님을 한 줌의 재로 떠나보내는 아버님을 차마 뵙기도 어려워 먼 곳에서 눈물지며 바라볼 뿐이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먼 이웃 대통령이 가져온 목련도 내년 봄이면 피어나련만

제자의 목숨을 먼저 구하고 조국의 바다에 바친 영혼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살고 싶다는 마른 외침, 어린 꽃들이여

먼저 간 스승의 애달피 귀한 넋이여

어서 우리들 모든 아픔 치유하고 다시 태어나라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박종순 산외초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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