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연날리기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푸른 하늘 높이 나는 새들을 보면 누구나 높이 날아가고 싶거나 무언가를 띄워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연(鳶) 날리기는 세계 곳곳에서 어제 오늘의 가림 없이 또한 남여의 성별(性別)과 신분의 구별 없이 즐겨오는 놀이다.
우리나라의 연은 때로는 군사적인 목적에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종교?철학적으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소망, 기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특히, 새해의 시작과 함께 연이 등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연(鳶)의 역사성을 돌아보면, 삼국사기 권제41, 열전 김유신(金庾信) 조(條)에 비담과 염종이 난을 일으키고 하늘에서 큰 별똥이 떨어져 수비군의 사기가 떨어지자, 김유신이 기지를 발휘하여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불을 붙여 띄우니 마치 별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과 같아 반란군이 동요를 일으켜 도망가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에서 당시 전쟁수단의 하나로 연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신라는 물론 그 이전시대에도 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의 최영 장군이 탐라 정벌시 연을 사용하여 공략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남이장군이 강화도에서 명주천으로 만든 연을 즐겨 띄웠으며, 임진왜란시 이순신장군이 왜적과 싸울 때 공격의 신호 및 암호용으로 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영조는 대궐에서는 청, 홍 편을 나누어 연을 날렸고, 동 리 별로 백성들의 화합을 도모코자 연 날리는 것을 장려하고 즐겨 관전하였다고 한다.
연의 소재와 날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슬기는 무엇일까? 연은 대나무와 한지로 만들며 연줄은 명주실이 쓰인다. 실에 부레풀이나 풀을 먹여 질기게 만들기도 한다. 얼레는 잣나무, 소나무로 육모나 팔모지게 만든다.
우리 고유의 연은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러다가 점차 연날리기를 놀이로 삼게 되었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되어 조선 시대에 들어와 연을 날리는 시기가 섣달부터 정월 보름 사이로 고정되었다.
이는 우리의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경기에 연날리기를 하면 농사에 지장을 줄 것으로 보고, 농한기인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정월 보름날 액막이의 민속과 관련시켜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연날리기를 끝내고, 다시 농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강변 등 넓은 공간과 알맞은 바람(초속 3~5m)만 있으면 연중 어느 때라도 연을 날리는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우리고유의 연은 그 형태가 다른 나라의 연과 달리 바람과의 관계가 매우 과학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연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연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방구멍이 있다.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메워 줘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연이 높이 띄우거나 그림, 모양 등에 관심을 두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연은 연을 날리는 사람의 조종에 따라 연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기능적 특성 때문에 연싸움(연줄 끊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연은 우리 겨레의 솜씨와 정서가 담긴 민예품인 동시에, 오늘날 항공우주과학이나 정보통신기기의 밑거름이 된 자연을 이용하는 즉, 바람의 힘의 원리(양력,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일찌기 활용한 생활 속의 과학이기도 하다.

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