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김헌섭 사회부장

얼마 전 집에서 언론을 통해서만 접하던 전화금융사기 일명 '보이시피싱'을 직접 경험했다. 휴대폰에 밀려 며칠에 한번 걸려 올까 말까한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다소 반가운 마음에 수화기를 들었더니, ars음성으로 전화요금이 24만여원이나 밀렸다는 내용이 고지됐다. 자동이체 되는 전화요금이 연체될 리 없다는 고민을 잠시하면서 이 것이 바로 '보이시피싱'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며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누르자 연체요금에 대해 안내해 주겠다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듣고 나서 다소(?) 심하게 야단치자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단력이 떨어지는 연로하신 분들만 생활하는 가정에 그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면 어땠을까. 그들 뿐 아니라 지각이 있다는 사람들도 교묘한 그들의 행위에 당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교묘해지는 수법

초기에는 국세청을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 금융회사를 사칭하는 수법을 사용했으나 최근엔 우체국 택배나 kt를 사칭하거나 경품 행사 당첨 등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보이스 피싱 피해도 발생했다. 시·군의원들을 대상으로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사기 행각이 시도됐다. 충북도내 한 군의원이 동료 의원 명의로 된 '돈이 급히 필요하니 송금해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고 송금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4월부터 지난 해 5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보이스 피싱 피해는 4235건에 피해 금액이 399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충북도내에서 발생한 보이스 피싱은 2006년 80건에서 2007년 1월부터 8월말까지 201건이나 발생하는 등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언론을 통해 피해 사례가 전달됐음에도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대로 당하게 마련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정부는 보이스 피싱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전화금융사기 피해예방 10계명'을 발표했다. 이동통신 회사와 초고속인터넷 사업자 등과 예방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뒤늦게나마 정부에서 적극 대응에 나서니 그나마 다행이다. 10계명은 미니 홈페이지와 개인 블로그에 개인 정보를 게시하지 말고, 종친회·동창회 사이트 등에도 주소록과 비상 연락처를 게재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전화를 이용한 주민번호와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 요구에 대응하지 말고 발신자 전화번호를 역 추적해 확인하는 등의 내용이 주요 골자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도 전화 금융사기를 당해 돈을 송금한 경우 은행이나 금융감독원을 통해 '계좌 지급 정지' 후 돌려받도록 하고, '개인 정보 노출자 사고 예방시스템'에 등록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스스로 예방하는 게 최선

전화 사기 피해를 입은 경우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급 정지된 계좌 주인을 상대로 소송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이 '대포통장'을 이용, 소송이 어렵고, 사기 조직도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 수사기관의 활동에도 한계가 있다. 경찰도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점차 교묘해지고, 지능화되는 그들의 수법을 앞서 가 검거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피해가 발생해 그 쪽으로 수사력을 모으면 어느 새 다른 수법의 사기 행각이 벌어져 사기단 검거에 어려움이 많다. 결국 보이스 피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 주의하는 방법 이외에는 특별한 방안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반상회 등을 통해 피부에 와 닿는 홍보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아직 그에 대한 자치단체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에 맞는 자치단체의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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