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칼럼>청주공예비엔날레총괄부장

피폐한 도시가 문화의 힘으로 부활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는 강력범죄의 소굴로 전락한 폐건물을 대상으로 10여년간의 문화개발프로젝트를 추진해 도시 전체를 되살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80년 전에 세워진 화력발전소가 방치되면서 강간 살인 마약범죄의 소굴로 들끓던 이곳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열고 신흥기업을 입주시키는 터빈홀(turbine hall)로 탈바꿈시켰으며, 전기공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최첨단 과학과 수학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사이보노(sci-bono) 디스커버리센터로 개조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됐던 감옥은 미술관으로 변신했으며, 뮤지엄아프리카, 넬슨 만델라 브리지 등 새로운 랜드마크 건설과 함께 도시 전체를 활력있는 문화도시로 리매핑 하고 있다.

영국 남서부지방의 셰필드는 인구 51만명의 중소 도시지만 도심공동화 문제를 문화산업으로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셰필드는 철강산업이 성장동력이었지만 1980년대 극심한 경기침체로 철강업계가 속속 문을 받으면서 어둠의 도시, 절망의 도시로 몰락하였다. 이후 셰필드는 문화산업지구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폐허가 된 공장 건물을 콘텐츠업체, 디자인업체, 영화사 등 다양한 문화산업 기업체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토록 하였으며 국립팝음악센터, 갤러리, 극장, 바, 벤처시설 등 다양한 문화센터로 재생하였다. 이 결과 셰필드는 도심공동화라는 숙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도시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8%가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등 도시개발, 경제활성화, 관광산업, 복지증진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혁신과 성장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의 중소도시인 나가하마도 눈여겨볼만 하다. 인구 6만명의 나가하마 역시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심공동화가 최우선 지역 현안이었는데 첨단도시로의 재개발과 기존의 건물을 활용한 리매핑 방안을 놓고 열띤 논쟁이 지속돼 왔다. 결국 나가하마는 옛 가옥을 그대로 활용해 공예클러스터로 재건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년 2백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도시로 발전하였다. 특이할만한 사실은 나가하마 지역의 전통문화와는 무관한 유리공예를 특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유리공예인들이 터를 잡기 시작하고 박물관 미술관이 하나 둘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생산 전시 판매 축제 등을 통해 도시 전체가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옛 가옥을 그대로 살린 전통적 가치와 유리공예를 특화시킨 혁신적 가치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독일 에슬링겐의 다스딕은 공업도시에서 예술도시로 변모한 또다른 사례가 될 수 있다. 다스딕은 폐허가 된 공장 건물, 폐교 등 낡은 건물을 그대로 살리면서 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폐건물이 영화관, 쇼핑시설, 전시장 등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모하는 아트펙토리(art fatory)의 성공사례인 것이다. 아트펙토리란 한때 도시경제를 이끌었지만, 퇴락해 빈공간으로 변해버린 지역을 정주형 레지던스 스튜디오로 개발한 것으로 작가들의 창작공간, 주민과의 소통공간, 거리예술공연 공간 등으로 활용된다.

국내에서도 낙후된 도시를 살리고 경쟁력 높은 문화도시,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중이다. 서울시는 상권이 죽어버린 일부 지하상가를 창작공간으로 활용키로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이고, 안양시도 재래시장 주변의 폐허를 문화로 재생하고 도시 전체를 예술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중이며, 청주시에서는 옛 연초제조창 공장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해 최첨단 문화산업단지로 조성했다.

우리의 주변에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공간들이 산재해 있다. 경쟁력을 잃고 칠흙같은 어둠이 엄습해 오는 재래시장, 폐교로 버려진 학교와 공장 건물, 낡고 허름한 아파트와 도심의 뒷골목, 심지어는 옛 국정원 건물 등 정부와 자치단체 소유의 건물들까지 널려 있다.

이들 공간에 인간의 온기가 돌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정보가 공유하는 신르네상스를 만들어 보자. 경쟁력 높은 문화공간을 만듦으로써 낙후된 도시를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며, 도시개발과 복지 증진이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 보자는 것이다.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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