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칼럼>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문화공연업계로는 최초로 100만불 수출탑상을 받은 코믹 퍼포먼스 '점프'. '점프'는 지난해 뮤지컬의 메카로 불리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했으며 세계 공연예술의 최대 시장인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객석 점유율 85%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난타와 명성황후에 이어 한국의 공연예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음을 입증받은 것이다.

'점프' 는 대사와 노래가 없이 안무와 음악, 특히 무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넌버벌' 문화상품이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2007년 국제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등극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여동생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 그녀가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스케이팅 실력에 있다.

동작의 정확성, 위기극복 능력, 풍부한 감정표현 등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사랑받는 진짜 이유는 피겨스케이팅 자체가 스포츠의 한 종목에 그치지 않고 종합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춤과 빛나는 외모, 은반위에서 펼쳐지는 그녀의 기예와 열정은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몇 해 전 작고한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공로로 금세기 최고의 실험적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고 있는 그는 음악과 예술사를 전공했지만 조각가, 행위예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명성을 날렸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던 그는 비디오의 폭넓은 표현가능성을 발견하고 순수 전자음악 작곡에서 시각미술로 전향한 뒤 비디오, 퍼포먼스, 영상물 등을 활용해 예술의 다양성, 미술의 역동성, 그리고 탈장르화를 선도한 이 시대 최고의 예술가다.

뮤지컬 '점프'가 단순한 무술공연에 그쳤다면, 피겨스케이팅이 스포츠 그 이상이 아니었다면, 백남준에게 비디오는 정보전달의 기능에 불과했다면 그들은 세상속에 사라지는 이슬에 불과했을 것이다. 결국 문화 또는 역사는 창조와 진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간의 다양성은 문화라는 코드로 집약되고 있는데, 우리 시대의 문화는 크로스오버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크로스오버란 두 개 이상의 요소들이 섞어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재창조되는 것을 말한다.

다양성의 시대를 반영하는 크로스오버는 각기 다른 성질의 개체들이 모여지면서 새로운 문화브랜드로 탄생한다.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체육·교육·경제·사회·국가 등 세상의 모든 분야가 함께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면서 보다 가치있는 상품과 문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크로스오버의 기원은 공예에서부터 시작된다. 도자·목칠·금속·섬유·유리·한지·가죽 등 다양한 공예의 장르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오면서 시대와 삶, 쓰임과 용도에 따라 물성이 다른 이것들이 서로 융합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한다. 이것들은 다시 다양한 형식과 틀로 시대와 공간을 연출하게 되고 사람들은 이러한 삶의 현장속에서 보다 새로운 변화와 문화양식을 꿈꾸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조각, 회화, 서예, 공예 등 미술의 경우도 그렇다. 도공의 작품에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목공의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진 벤치가 조각과 서각을 통해 새로운 매혹을 느끼게 된다. 비디오 등 다양한 정보혁명을 비롯한 첨단산업이 순수미술과의 랑데부를 통해 새로운 문화코드로 발전하고 있다. 책이 미술을 만나면 북아트가 되고 쓰레기통에 버려질 폐품도 예술가의 온기를 만나면 정크아트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오페라와 뮤지컬이 만나면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생산한다. 스포츠와 예술이 만나면 짜릿하고 스릴만점의 감동을 가져 준다. 하이테크와 하이터치가 만나 세계적인 명품으로 탄생되고 전통과 현대, 과거와 미래가 만나 새로운 문명으로 탄생한다.

/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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