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칼럼>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우리 주변에는 잊혀져가거나 버려지기 쉬운, 그렇지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전통문화의 경우는 당장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무한경쟁 사회의 경제논리에 밀려 명맥이 끊기고 사장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소실되는 뼈아픔을 겪고 나서야 부랴부랴 우리 것을 되돌아보고 보존과 창조적 계승을 위해 목청 높이는 것이 우리네의 현실이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 첩첩산중의 오지마을이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닥나무를 생산하고 한지를 만들며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는 전통문화체험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산골짜기, 6·25 전쟁이 일어난 사실도 모르고 지내올 정도로 외진 마을에 화가 이종국씨가 터를 닦으면서부터 한지마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지를 생산하고 해학적이며 익살스러운,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시골풍경을 그려 넣는 등 독특한 한지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벌랏마을에서 생산된 한지와 나무, 자연에서 채취한 염료를 갖고 조명등, 부채, 손수건, 솟대 등 기예와 감성미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지는 씨앗을 심어 1년동안 닥나무를 키운 뒤 가마솥에서 삶고 겉 껍질을 베껴내야 하며, 닥풀과 함께 물에 풀고 뭉치며 두들기는 등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온전한 작품으로 탄생하기 때문에 닥나무 재배에서부터 생산과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하는 작가는 국내에 몇 명 되지 않는다. 이씨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마치 자신의 삶처럼 소화해 내고 있다.

한지야말로 흙과 불, 물과 빛, 자연과 인간, 음과 양이 함께하는 생명의 결정체라고 주장하며 15년간 이곳의 주민들과 함께 땀과 열정을 쏟아 붙고 한지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간의 노력 끝에 소전리가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됐으며 마을 입구에는 '벌랏 한지마을'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지 체험장이 들어서게 됐다. 벌랏마을 주민들에게 한지의 복원은 새로운 희망이 된 것이다.

한지는 천년의 숨결과 찬란한 문화를 묵묵히 간직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1377년에 제작되고, 이에 앞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51년에 제작될 때 한지는 그 중심에서 한 장 한 장, 한 땀 한 땀 소중한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한지가 천년을 견딜 수 있고 국내·외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종이의 원료로 닥나무를 사용했는데 중국과 일본의 그것보다 섬유의 조직방향이 서로 90도로 교차하면서 질기고 균일하며 섬세한 입자를 형성하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한지제작 과정에서 원료에 들어 있는 전분 단백질 지방 등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을 갖고 있으며 종이의 입자를 섬세하게 하고 얇게 뜰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기법을 갖고 있었다. 특히 순백색의 우량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잡색을 띤 비섬유 물질을 완전히 제거하는 한편 냇물과 천연표백제를 사용하는 등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이와함께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감잎, 쑥잎 등 식물을 활용한 천연 염색으로 다양한 컬러의 한지를 생산하기도 했다.

/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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