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안정성과 곡선미의 白眉

▲국보 31호 첨성대.
우리나라는 농경국가로서 비와 바람 등 천기의 변화가 지대한 관심사 중의 하나여서 천문관측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하늘의 변화는 왕실과 백성들의 평안과 직결되는 신의 뜻이라고 여겨 항상 주의 깊게 하늘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경주의 첨성대는 '삼국유사'에 신라27대 선덕여왕 16년(서기 647년)에 백제인 아비지(阿非知)가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로,우리나라의 천문학과 기상학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질 좋은 화강암으로 기단에서부터 높이 9.1m, 밑지름 4.9m, 윗지름 2.85m로 쌓아 만든 이 첨성대는 건축학적으로 정교하며 역학적으로 균형이 잘 잡히고 약 1천4백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첨성대는 천문학적으로 볼 때 당시 천문학부문에서 지배하던 '천원지방'설에 따라 위는 둥근 몸체, 기초에는 네모난 지대석을 놓았고 그 대석 위로 돌을 모두 28개 층을 쌓아 천체의 별자리 28수를 나타내었다. 몸체는 27단이나 맨 위의 정자석을 합치면 28단이고 기단석을 합치면 29단이며, 원주부에 사용된 석재수는 하층부터 27단까지 3백62개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27단은 선덕여왕의 27대, 28단은 기본 별자리 28수, 29단은 한달 29일을 의미하고, 3백62개는 1년의 일수(日數)를 상징한다.

그리고 아래로부터 중간에 있는 네모난 출입구의 밑단까지는 마치 1년을 12개월로 나누듯 12개단으로 쌓았고, 그 위부터 출입구 높이까지는 1년을 4계절로 나누듯 4개단으로 쌓았다.

또한 대석(臺石)으로부터 높이 약 4.16m되는 곳에 정남(正南)을 향하여 1변의 길이가 약 1m인 네모난 출입구를 통하여 햇빛이 그 안벽에 비추는 그림자의 위치와 그 길이에 따라 시간과 절기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하였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비추게 돼 있고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져 춘하추동의 분점(分点)과 지점(至点)을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

첨성대는 축조와 완공 뒤의 안정성을 특별히 고려하여, 1단에서 12단까지는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으로, 13단에서 20단까지는 비스듬한 직선, 21단에서 23단까지는 경사된 직선과 수직 직선을 이어주는 이변곡선(移變曲線), 24단에서 27단까지는 수직직선(垂直直線) 부분으로 돼 있다.

이런 점에서 첨성대의 전체적인 외형은 하나의 완전한 곡선이라기보다는 두 곡선과 두 직선으로 된 완만한 복합곡선으로 되어 있어서 안정되고 조화된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첨성대는 내부정자석의 배치, 원주부의 하부에 채운 흙, 남쪽창의 위치는 창을 중심으로 아래는 밖으로 부풀은 경향을, 위쪽은 오그라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중심점에 창을 내어 구조자체의 약체화를 최소화하는 등 주도 면밀하게 여러 석축공법을 종합 응용하여 그 안정성에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특히 11단 아래에 차있는 흙은 원형의 변형에 저항하는 내력을 발생시켜 축조 시 무너지는 위험성을 낮추었고, 완공 뒤에는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게 되어 외력과 기초부등침하및 지진 등으로 인한진동 등에 대비할 수 있어 첨성대의 원형을 보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그 형태와 크기, 석재의 경제적 처리·배치, 역학적 안정성, 미학적 곡선미·기능성 등을 두루 갖춰 치밀한 설계를 밑바탕으로 건축된 석조 건물로, 뛰어난 예술성과 과학기술이 최상의 조화를 이룬, 우리의 독창적 과학기술의 세계를 보여주는 세계적 유물이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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