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自我와 쉼없는 '소통'
젊은작가 ② 석창원
| 도예가 석창원씨가 도자에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
세 가지의 화두를 던지겠다. 자화상, 초현실주의, 그리고 도자기. 이 세 가지를 갖고 마치 퍼즐게임을 하듯 즐기며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자화상(self-portrait)은 르네상스 초기인 15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렘브란트, 고흐, 고갱, 세잔 등 수많은 화가들이 다루었던 대표적인 소재거리였다.
자기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스스로가 화법을 연구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양한 기법과 색감으로 표현함으로써 반성하고 고독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똑같은 작가의 자화상일지라도 표정과 배경, 때로는 전체적인 이미지까지 확연히 차별화되는 것은 그의 심리적인 변화와 표현 기법의 다양성, 그리고 환경의 변화 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중절모를 쓴 낮선 신사의 얼굴위로 커다란 담배파이프가 둥실둥실 떠있고 여체 하반신을 달고 있는 물고기가 바닷가에 쓰러져 있으며 큰 바위덩어리가 공중에 떠 있는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처럼 현실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현실속에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또 다른 삶의 공간을 창조해 내는 것이 초현실주의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화상-초현실주의-도자의 새로운 만남
이처럼 자화상과 초현실주의가 흙 또는 도자를 만난다면 어떤 결과물이 탄생될까? 흥미로운 이 세가지 테마를 갖고 창작열을 불태우는 작가가 있다. 주인공은 도예가 석창원(43)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공포와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고독한 남자의 얼굴,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나비, 성적인 유혹, 그리고 저주받은 사탄의 몸부림….
내게도 이런 복잡다단한 내면세계가 있을까. 인간의 욕망이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혼란스러우며 통제 불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긍극적으로 내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며, 내 인생의 정점에 서 있을때는 어떤 모습일까. 작품 앞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흙을 소재로 작가의 외형인 얼굴과 내면세계를 다양한 생명체와 연계시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기법이 고도의 드로잉과 화려하거나 어두운 명암이 절묘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본뜬 뒤 흙을 이용해 인체의 형상을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세계 또는 영적인 감각을 작품에 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 범상치 않다. 초벌구이를 한 곳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점을 찍어간다. 그것도 아주 가늘고 섬세한 붓으로 다양한 색감을 표현한다.
작품에 따라서는 수개월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세월과의 끝없는 싸움, 고독과 가난,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과감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용기 등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재벌을 하고 다시 손질을 한 뒤 한번 더 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가는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과감하게 깰 것을 작품을 통해 호소하고 있다.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 선과 악, 자연과 인간이 이분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이터치 드로잉 기법과 명암의 절묘한 표현
| 도예가 석창원씨의 '자화상'. |
작가의 ‘자화상’시리즈는 성선설(性善說) 또는 성악설(性惡說)이라는 극단적인 사상이 하나가 된다.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진 인간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을 나비와 식물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또한 불끈 솟아있는 성기와 성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을 두 손으로 내리치는 또 다른 자아, 그리고 푸른 하늘을 닮고 싶어하는 인간의 끝없는 방랑이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자화상’에서는 인간의 절대고독을 만난다. 우수에 젖어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와 이상세계를 찾아 방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물론 최근의 작품에서는 새로운 반전을 꿈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아는 더 이상 방랑과 고독에 빠지지 않고 열린 세계, 희망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자 몸부림친다.
그래서 자아의 모습을 다양한 기법으로 형상화했던 앞의 작품과는 달리 물방울과 생명의 소리를 눈과 귀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스펙트럼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는 나비의 모습 또한 기운차다. 그의 작품은 도벽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공공미술이 대세인 한국 미술계에 하나의 샘플이 될수 있을 것 같다. 초현실주의적 자화상을 입체 또는 평면으로 만드는 등 기법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도예가 세르게이 이수로프의 작품과도 표현과 기법이 흡사하다. 아니, 하이터치 기법과 다양성은 석창원이 한 수 위에 있다. 손끝의 정교함과 기예, 그리고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작품은 서구의 기법과 한국적인 기예가 만나서 탄생한다. 서구의 표현주의와 동양의 철학이 함께 만나 작품으로 선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깊고 느리게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깨달음까지 있다.
충북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의 한적한 마을에 공방을 두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이제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무대삼아 활동하는 작가로 대성하기 위한 긴 여정을 출발해야 한다. /변광섭(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작가약력]△1966년 충북 충주 출생 △홍익대 대학원 도예전공 △한국공예대전 최우수상, 경기도자비에날레 입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은상, 서울현대도예공모전 특선 △200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작가, 한·일현대도예전 초대작가(2004·2008/일본), 한·중교류전초대작가(2006/중국베이징), 충북의 젊은작가 초대전(2006/한국공예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