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칼럼>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다시, 이 시대의 화두가 소통(疏通)으로 집약되고 있다. 문화의 소통, 생명의 소통, 생각의 소통, 역사의 소통을 통해 상생과 통섭의 사회, 미래지향적인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로 불거진 현 정부의 정책혼선, 촛불과 함께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성난 민심 역시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여와 남, 노와 사, 서울과 지방 등 이념과 소신, 그리고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곳마다 대립각을 세우고 연일 날 선 논쟁을 벌이는 것 역시 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세상에 대한 편협 된 사고와 지나친 이기주의, 그리고 포퓰리즘(populism)이 소통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광장의 문화, 광장의 열정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제도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화의 소통, 생명의 소통, 생각의 소통, 역사의 소통 그 중심에 광장이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소설가 최인훈은 소설‘광장’을 통해 어두운 밀실과 잿빛 세계에서 정의와 사랑과 자유가 보장되는 푸른 광장을 꿈꾸었다. 토마스 모어는‘유토피아’에서 사회의 각종 부패와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이루려는 이상사회, 즉 광장문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굳이 소설속의 광장이 아니더라도 세계의 문명과 문화의 중심에는 푸른 광장, 열린 광장이 함께 하고 있다.

파리에는 상젤리제·퐁피드센터·몽마르트 등 발 닿은 공간마다 함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광장이 있다. 파리의 아름답고 고풍스런 도시경관과 다양한 문화체험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만 하지만 이들 광장에서 잠시 여행의 피로를 풀거나 삶을 재충전하는 매력도 흥미롭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 로마의 스페인광장과 트레비 분수, 베니스의 산마르코광장 등도 이미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세계적인 관광지 기능으로 확장되었다. 센트럴파크는 푸른 숲과 드넓은 잔디밭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꾸몄다.

하이드파크에는 다이애나 분수가 조성되었는데 죽은 다이애나비를 애도하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껏 뛰어 다니며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터로 꾸며져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일약 세계적인 명소가 된 스페인광장은 시민들의 산책로와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지만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의 달콤한 여정으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산마르코광장은 베니스의 추억과 사랑을 나누는 최적의 공간으로 인기 절정이다. 이들 광장의 공통점은 녹색·오락·휴식·문화가 함께하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푸른 잔디와 잘 꾸며진 조경, 문화와 문명, 국경을 초월해 세상 사람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자유의 공간이자 삶의 쉼표와 같은 곳이다. 어디 이 뿐인가.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가 시시각각 펼쳐져 그야말로 문화와 문명의 프리마켓을 연상케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새로운 광장문화의 시대를 열고 있다.

서울광장·청계광장에서부터 전국의 주요 도시마다 크고 작은 광장이 조성되고 있다. 잘 가꾸어진 광장은 광장 이상의 기능을 갖는다. 문화예술의 공간, 관광상품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닫힌 사회에서 열린사회로 가는 길목에 광장이 있다.

우리를 재발견하고 일탈속의 조화로운 자율도 만끽할 수 있다. 갈등과 분열과 대립에서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구심점이 되기도 하며 공동체의 헌신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광장에는 성난 민심과 촛불의 아슬아슬함만이 있다. 촛불의 열정, 촛불의 희생, 촛불의 거룩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본질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광장의 촛불을 내 가슴속의 꺼지지 않는 사랑과 신뢰, 열정과 봉사의 그것으로 다시 꽃피게 해야 한다. 이와함께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행동,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미래를 향한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자신의 작은 소망을 하나하나 실천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 더불어 함께 사는 아름다운 조직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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