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생활 동의보감>

박 성 규 예올한의원 원장 본보 한의학 전문위원

비강에 염증이 있는 것을 비염이라 하고 부비강에 염증이 있는 것을 축농증이라 한다. 병소와 병의 깊이는 다르나 병의 근본원인은 동일하다. 대체로 비염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축농증으로 변한다. 요즘 비염이나 축농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비염이나 축농증은 그 자체로도 매우 성가신 질병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호흡에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신체와 정신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는데 있다.
인간은 천지의 기운을 먹고 사는데 하늘 기운은 호흡을 통하여 코로 흡수되고 땅 기운은 음식을 통하여 입으로 흡수된다. 호흡과 음식섭생이 모두 원활히 일어나야만 정신과 신체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코는 신기(神氣)가 출입하는 통로이다. 코의 호흡운동에 장애가 생기면 신기의 출입이 원활하지 않아 정신 상태가 온전하게 유지되지 못한다. 실제 비염이나 축농증이 있으면 머리가 맑지 않고 정신 집중이 어렵다. 이런 상태는 누구에게나 해롭지만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비염이나 축농증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원인이 다양하지만 결국 장부에 이상이 생겨 발병하는 것은 동일하다. 몸이 냉하거나 폐기가 부족한 경우 밤낮이나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비염이나 축농증에 걸리기 쉽다. 폐기가 부족하면 호흡을 통하여 들어온 차가운 공기가 폐를 직접적으로 손상시킨다. 따라서 몸에서는 자구책으로 호흡의 통로를 막거나 혈액을 과다 공급하여 공기를 데우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제반 노력이 콧물 재채기 코막힘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장부에 열이 편성한 경우에도 열을 냉각시키기 위해 폐와 호흡기로 열이 몰리기 때문에 발병한다.
본래 허약하게 태어났거나, 몸이 냉하거나 열이 많거나, 수술이나 올바르지 못한 시술로 기력이 쇠잔하였거나, 출산 등으로 기력이 손상되었거나, 수면생활 식생활을 규칙적으로 영위하지 못하여 장부에 이상이 생겼거나, 인스턴트 음식, 서양식 음식 또는 기능식품 등으로 영양이 편중되거나 과도하게 공급되었을 때, 술이나 고량진미를 즐기거나,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폐기가 약해지거나 폐에 열이 몰려 비염이나 축농증이 발병한다.
비염이 오래되면 코에 변형이 일어난다. 비중격이 휘거나 코의 혈관이 과도하게 부풀어 코를 항상 막아 호흡을 곤란하게 만든다. 축농증이나 코골이도 동반하게 된다.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이 생기기도 한다. 냄새를 맡지 못하거나 호흡이 막혀 입으로 숨을 쉬며 코에서 썩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 때 발병한 비염을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병이 더욱 악화되어 다른 질병을 부르며 고질화되어 얼굴의 변형까지 유발한다. 고질화된 질병은 치료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염의 제반 증상은 인체의 자구책이지 그것 자체가 병은 아니다. 자구책일 뿐만 아니라 인체에 취약점을 각성시키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떠한 질병이든지 신체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할 때 적절히 도와주면 쉽게 완치할 수 있다. 이를 방치하거나 임시변통적인 치료에 의존하면 질병이 고질화되는 것은 물론 장부나 골수에 이르러 중병이 된다.
비염이나 축농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비강이나 부비강의 염증을 제거하거나 항생제 등을 투여하거나 수술을 하는 것은 고식적인 방법으로 뿌리를 보지 못하고 잎사귀만 치료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허로나 장부의 편성편쇠로 발병한 것이므로 근본을 다스려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올바른 자세와 규칙적인 생활, 적절한 음식, 스트레스 관리 등이 비염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기력 손상이 심하지 않은 초기에는 비강을 소금물로 세척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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