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 가까이'… 예술·실용 아름다운 조화

목공예가장기영

공예계에서는 요즘 예술이냐 실용이냐를 놓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예술성이 짙으면서도 실용적 가치를 지닌 것이 공예가 아니겠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예술성과 실용성의 어울림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에 나오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어느 작가든 이 두 가지를 조화롭고 균형감 있는 작품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쪽을 강조하고자 하는 노력과 주장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공예는 쓰임이 우선이다. 쓰임은 생활양식을 규정하는 코드이며, 당대 문화양식을 대변하고 있다. 공예의 쓰임은 어느 시기에나 불변의 가치로서 공예만의 독특한 형식과 틀을 만들어 주었으며, 지금도 새로운 문화코드로 발전하고 형성돼 가고 있다.

공예가 시대를 담는 거울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예야말로 인간의 온기가 서린, 실용과 탐미가 어우러져 싱싱한 생명력을 발하는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쓰임(use)이 아닌 공예는, 유혹(誘惑·temptation)하지 않는 공예는 ‘무늬만 공예’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기예(技藝)를 통해 보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 생성되고, 이것들을 우리 곁에서 눈으로 보고 사용하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공예품만의 특권이기도 한 것이다.

예술과 쓰임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여행

충북 괴산군 청안면에서 ‘느티나무공방’을 운영하는 목공예가 장기영(43·사진)은 공예계의 화두거리인 예술과 쓰임을 매끄럽게 표현하고 있는 작가다.

젊은 작가가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이 두 가지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고,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장기영은 형태는 기능을 따르되 조형은 시대의 미감이 반영된 작품만을 고집한다. 작가는 나무라는 소재 자체에서 오는 거침과 투박함을 소박하고 단정하며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고도의 감각과 기술의 하이터치 기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연출해 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빛깔과 촘촘하고 고운 나뭇결을 그대로 살리고 있으며, 과장과 꾸밈이 없어도 조화로운 멋을 내고 있다. 자연을 닮아 더욱 친근감이 있으며 예술적인 아름다움 또한 절정에 달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모두 쓰임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고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작품만을 고집하고 있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특별한 멋을 부리지도 않았지만 생김새나 색깔, 고유한 나뭇결까지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배어난다.

작품의 테마는 모두 자연이다. 나무라는 소재가 자연 속에서 잉태되었고, 그 자연 속에서 모든 생명체가 살아 움직이며 꿈을 꾸듯 작가는 작품 하나하나에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작품마다 작지만 애틋한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나무’와 ‘새’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 자연의 따사로움이 숨 쉬고 있다.

작가에게 쓰임은 곧 실용미학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애초에 구상하지도 않는다. 선반, cd꽂이 램프, 향합, 수반, 콘솔, 실내벤치, 조명등, 시계, 향꽂이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나무를 갖고 이토록 많은 작품을, 이토록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을까 신비스럽다.

나무와 새, 그리고 작가의 열정

이와함께 작품의 완성도는 목공예 분야의 그 어느 작가 못지않다. 아니, 기라성 같은 작가들도 그의 작품 앞에서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나무의 숨결,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숨은 노하우와 열정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 고르는 일이다. 목재의 굵기와 결을 살펴 무엇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 자연의 미를 표현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데 스케치가 끝나고 작업이 시작되면 몇 날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운다. 고운 사포질과 칠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 자신의 혼과 열정을 과감 없이 작품 속에 투영시킨다.

작가는 쇠붙이를 전혀 쓰지 않고 나무에 장부와 장부구멍을 만들어 사개맞춤을 한다. 식물성 기름으로 칠을 하고 색을 쓸 때도 친환경 소재만을 고집한다. 때로는 원목 그대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나무만을 소재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석(烏石)도 즐겨 사용하는데 나무와 돌의 만남은 새로운 생활미학으로 탄생한다.

나무와 인연을 맺은지도 20년이 넘었다. 청주대학교 공예과과 청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예를 전공한 그는 작은 체구지만 힘이 넘친다.

그동안 개인전 단체전 등 100여회에 걸쳐 전시회를 열었다. 충북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초대 및 추천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수상경력도 자랑하고 있다.

그의 진가는 최근들어 절정에 달하고 있다. 2005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작가로 참여하였으며, 2007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는 공공미술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 역시 그의 소신인 쓰임을 대전제로 한 벤치 등의 작품을 다양한 기법과 소재로 표현하면서 공예계에 새로운 반란을 예고했다. 물론 그는 나무라는 소재를 뛰어넘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장르의 다양성, 새로운 쓰임으로서의 미적세계에 대해 무한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공예계에서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이 요구된다. 쉼 없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가 변화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공예계의 혁신과 가치를 찾아 고뇌하는 장인정신이 요구된다. 물론 작가 장기영은 이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공예라는 척박한 토양에서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켜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이제 생활문화를 견인해 주는 주체로서, 우리 시대의 문화 수준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선구자로서, 그리고 크라토피아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장인으로써 새 출발을 기대해 본다./변광섭(객원 논설위원)

[작가 약력]◇1966년 충북 증평 출생 ◇청주대학교 대학원 산업공예학과 졸업 ◇충북미술대전 초대?추천작가상(2005) 전국공예품경진대회 특선(1999), 충북미술대전 대상(1997), 현대산업디자인대상전 특선(199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공공미술선정작가(2007), 충북의 젊은작가초대전(2006·한국공예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작가(2005), 한·아세안공예특별전(2004·청주) 등 100여회 개인전 및 단체전 참여 ◇현 증평군미술협회장, 괴산군 청안면 느티나무공방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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