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화폭 속에 담긴 '시간의 미학'

얼핏 동화책 속 우스꽝스런 장면 같다. 그러면서도 소름이 오싹 돋을 만큼 공포스럽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정지된 화폭 안에서 신체들은 두 세개씩 오버랩된다. 4차원 세계의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유다. 으스스함에 고개를 돌렸다가도 이내 그림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화법이다.


서양화가 사윤택(37)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리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인물과 그를 둘러싼 공간 모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울퉁불퉁 뒤틀려 있는 모양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흰색 물감을 듬뿍 풀어 명도를 낮춘 파스텔톤의 스산함은 중복묘사된 현상들과 어우러져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사윤택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지된 화폭에 시간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인체와 공간이 뒤틀린 순간을 회화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과녘은 언제나 시간과 의식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현상에 대한 해석이 곁들여진다.

20세기 전반기에 접어들면서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기존 조화와 균형을 모토로 한 고전적 인체조형미를 과감하게 파괴하는 시도가 있었다.

사윤택도 조형의 파괴를 시도한다. 그의 화법은 우리사회에서, 특히 인터넷과 포토샵을 다루는 네티즌 사이에서 널리 향유되고 있는 '캡처' 기능과 너무도 닮아있다.

이미 놀이화된 '캡처' 기법은 공중파 매체 혹은 영호, 드라마, 사적인 동영상에서 특정장면(컷)을 정지시켜 추출해 보통의 경우 의식화되지 않는 표적을 극단적으로 희화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사윤택은 이와 같은 놀이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가 우리 네티즌의 한 놀이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캡처, 즉 순간포착의 문제를 시간과 충격, 그리고 의식경험을 회화적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날 공설운동장에서 우연히 날아오는 공에 머리를 맞았어요. 순간 고개가 딱 꺾였다가 다시 튕겨지면서 주변이 휙~ 하고 지나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찰라에 느낀 수평적 공간과 무의식의 세계, 기억할 수 없는 순간적 멈춤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경험은 작품 '슈우욱!(133x200㎝, 오일 온 캔버스, 2006)'에서의 날아오는 공과 그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피하려는 인물의 굴절된 모습으로 표현된다.

여기에다 작품 'whoosh! long time(133x200㎝, 오일 온 캔버스, 2007)은 동사무소 민원실 의자에 앉아 전면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두 개의 공간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 한 공간으로 묶어내고 있다. 오른쪽 테니스장에서 날아오는 공에 순간 고개를 돌리며 경계하는 모습은 마치 세잔이 사과 하나를 놓고 위와 아래, 혹은 양 옆에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기법과 일치한다.

사윤택은 최근들어 판화기법을 이용한 새로운 화풍도 실험 중이다. 작품 'whoosh! capture play(130x120㎝, 오일 온 캔버스, 2007)는 여러 개의 움직임을 덧찍어 역동성 극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지된 공간 안에 시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사윤택 작품은 때론 잠재되고 때론 강하게 표면화되는 의식생채기의 회화적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실존 과 또 다른 실존이, 현상과 또 다른 현상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패러다임과 또 다른 패러다임이, 시간축과 또 다른 시간축이, 공간과 또 다른 공간이 서로 충돌하면서 교차한다. 그 충돌과 교차의 결과는 어떤 양상을 띨 수 잇는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태도를 제시한다.

그가 제안하는 해석의 태도는 서로 다른 차원 세계의 충돌과 교차, 의식경험은 명료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떨림과 생채기로 왜곡돼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제나 어떤 사태에 대한 해석을 계속해서 유보하게 만든다. 이전의 표상, 의식경험, 그리고 해석을 끊임없이 해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무의식에 무엇이 날아와 안착했는지의 명료한 전달, 시간과 공간초월, 그게 바로 사윤택의 가능성다. /글=이성아기자·사진=노수봉기자


스피드인터뷰

젊은작가들의 고민은 언제나 경제력에서 시작된다. 나름대로의 입지를 굳힌 기성작가처럼 명예나 안정된 직장이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수입이 일정치 않고 작업실 마련은 꿈에 불과하다. 학원강사 등과 같은 짧은 아르바이트로 물감과 캔버스를 마련하며 힘든 작업을 이어갈 뿐이다. 세 돌짜리 딸을 둔 가장 사윤택 또한 책임감에 올 여름이 더욱 무덥기만 하다.

- 청주시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있다가 올해 또다시 하이브스튜디오로 옮겼다. 작업실만 찾아다니는 철새작가 아닌가.
"각 스튜디오마다 특징이 있다. 젊은 시절 가능하면 많은 곳을 돌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싶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내 작업실 마련에 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스튜디오 입주를 작업실 마련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청주에서는 더 이상 돌아다닐 스튜디오가 없지 않은가.
"기간이 만료되면 타지역 스튜디오를 생각하고 있다. 굳이 서울이 아니라도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면 어디라고 갈 생각이다."

-충북을 떠나겠다는 말인가.
"아쉽지만 그렇다. 작가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역을 지키겠다고 마냥 불안한 채로 머물다보면 퇴보만 있을 뿐이다. 분명한 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연어처럼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작품이 기괴스럽다는 평도 있는데.
"파스텔톤 색감과 울퉁불퉁 찌그러진 모습 때문일 것이다. 여기다가 두 세개의 모습들이 겹쳐지면서 일반 회화하고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또 다른 표현 아닐까 싶다. /이성아기자

작가약력
▲1971년 청주출생 ▲청석고·서원대(미술교육)·중앙대학교 대학원(회화) 졸업 ▲'이미지-이미~쥐'(2000, 조선화랑)·'지속적인·순간적인'(2001, 롯데화랑 창작지원프로그램)·'낯선풍경'(2003, 송은갤러리)·'지루한 서사-무의식에 공백에 공을 던지다'(2005, 신미술관)·'김동유 사윤택 릴레이전'(2006, 이공갤러리)등 개인전 6회 ▲중앙미술대전 2006 선정작가상 등 수상 ▲청주시창작스튜디오 제1기입주작가 ▲현 청주시하이브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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