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칼럼>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변광섭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8월 한 달은 한반도 전체가 폭염과 열대야로 밤·낮없이 푹푹 찔 것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더위 탈출을 위한 묘안 찾기에 분주하다. 눈이 시릴만큼 푸른 계곡에서 무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가슴 터질듯 망망대해의 바닷가로 달려가 열정의 꿈을 낚아 올리기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외로 명품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은 인산인해일 것이다.

아직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거나,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뜨거운 여름날을 지혜롭게 보낼 수 있는 제안을 하고 싶다.

문화와 함께하는 피서, 책을 읽으면서 정보의 바다에 흠뻑 빠져보는 피서, 그리고 한반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체휼하는 피서가 그것이다.

문화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이자 새로운 세계를 향해 큰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충전소와 같다. 시원한 계곡이나 호수에 발을 담그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져보는 것은 자유지만 찜통더위, 바가지 상술, 피서객들의 인파속에 금쪽같은 휴가를 소비하고 후회만 남을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문화피서를 즐기면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하면 좋겠다.

한국공예관에서는 지금 온 가족이 함께 공예체험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공예랑·놀이랑'이 전개되고 있다. 큐레이터의 꼼꼼한 작품 설명을 듣고 전시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며 다도체험을 통해 그윽하고 품격높은 이벤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진천 종박물관에서는 조각가 이점원 씨의 '풍화인 바람을 잡다'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자연의 조화로움을 바람과 꽃이라는 테마로 나무에 한잎 두잎 새겨 넣었다.

이밖에 국립청주박물관이나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는 우리의 오랜 삶과 문화를 오롯이 만날 수 있는 소장품전이 펼쳐지고 있다. 문화는 곧 에너지다.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을 꿈꾸는 자여, 문화와 함께하라. 삶의 에너지를 담아라. 독서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여름을 값지게 보내는 방법이다.

어렵고 딱딱한 전문서적 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교양서적이 좋다. 서점으로 달려가 직접 책을 골라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수필이나 시집 한 두 권은 기본이고 자신의 업무에 양식이 될 수 있는 책을 몇 권 추천받아 읽으면 남은 인생, 남은 여정이 행복할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르헤스는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반도 구석구석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추천할 만하다. 한국의 자연·한국의 전통·한국인의 삶의 양식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껴보자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명소가 아니라 우리 곁의 작은 오솔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즐겨보자. 풀 한포기와 나무 한 그루, 맑은 물소리와 녹음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 고풍스런 문화재와 역사의 숨결 등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 길을 따라 내 몸 안으로 전해져 오는 땅의 촉감을 느끼고 대지의 아우성을 들어보자.

길 위에 길이 있다. 그 길은 계절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창이며, 계절과 맞닿은 공간의 문이다. 그 길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행하는 투어리스트들의 상처입은 가슴이다. 길은 만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 문화와 문명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 끝없이 조우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지혜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다.

길은 추억이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이별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추억을 만들어 준다. 짧거나 강렬하게, 그리고 촉촉하거나 그윽하게 말이다.

길은 동행이다. 혼자 걸어도 혼자가 아니다. 아프고 시린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슴 따뜻한 동반자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시원한 솔바람과 함께 내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춤도 추는 예쁜 파트너다.

아, 이 뜨거운 여름날에 우리는 어떤 길을 찾고, 어떤 길로 떠나며, 내 가슴에 어떤 삶의 의미를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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