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향한 희망의 날갯짓

- 나무·풍선 이용해 '진화'·'호흡' 시리즈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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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사회적 틀 속 자유 꿈꾸는 현대인 표현

조각가 류제형이 작품 '호흡ⅱ'를 완성하기 위한 색칠을 하고 있다.

경직되고 딱딱한 틀이 있다. 자유를 향한 풍선의 몸부림은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터질듯 부풀어 오른 꿈은 비좁은 틀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힘겹다. 그렇게 바깥세상으로 표출된 유기체는 삶의 의지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조각가 류제형(40)은 나무와 풍선으로 작업을 한다. 정육면체 등의 틀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이 말하려는 다양한 석고틀을 고정시킨다.

그 속에 풍선을 넣고 바람을 주입하면 석고틀 형태에 따라 풍선모양이 부풀어 오른다. 틀을 비집고 나온 플라스틱 모형이 단단하게 굳으면 풍선을 빼고 색칠을 한다.

너무 간단하다 싶을 정도의 작업. 그러나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꼬박 한달 정도가 걸린다.

형태를 고정시키는 과정도 과정이거니와 채색을 할 때 한꺼번에 많은 물감을 분사하다보면 주루룩~ 흘러내려 얼룩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칠하는 것이 '기다림'을 수반한 완성이다.

류제형 작품은 크게 '진화'와 '호흡' 시리즈로 나뉜다. 예전 작업주제로 정했던 '진화'에서는 정신적 욕망과 미래의 꿈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구상에서 점차 비구상으로 변화했는데 갑갑한 틀을 탈출해가는 모습이 마치 생명진화 과정의 고통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표출된다. 비좁은 구멍에서 삐져나온 큼직한 덩어리 하나, 작은 구멍에 날개를 단 작품들은 모두 공간탈출 욕구를 의미하고 있다.

작가가 진화 시리즈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 다소 일찌감치 가정을 꾸렸지만 가난한 작가는 자신에게 놓여진 '삶'이라는 숙제가 너무 어려웠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언제나 불안요소였고 무의식 속에서 뭔가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절대적 결심이 필요했다.

"힘든 오늘을 발전시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니 꼭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딱딱하고 비좁고 암흑같은 공간을 비집고 탈출에 성공한 풍선처럼 말이죠."

진화시리즈의 주재료는 알미늄이 됐다. 가장 구하기 쉬운 데다 브론즈나 스텐레스 스틸보다 강도가 한참 떨어져 다루기에 편했다. 그러면서도 돌이나 나무와는 달리 미래지향적 얘기들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정형화된 틀을 과감히 탈출하려는 '호흡' .

류제형은 올해부터 '호흡'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 주제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꿈·이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바꿔놓고 있다.

다시말해 구속력 강한 자유롭지 못한 현실(삶)은 '틀'이라는 형태로 고정되고 그 틀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우성과 몸부림(자유)을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유기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유기체들의 다양한 형태와 극도의 긴장감을 통해 작가는 해방과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호흡의 멈춤은 목숨줄을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닫혀진 틀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 호흡을 이어가려는 삶의 강렬한 욕구, 뭐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같은 생각은 작가가 10년 전부터 틈틈이 이어온 스케치 결과물이다.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지만 틀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빠져나가고 싶은 갈망. 정신적·사회적 규범이라는 틀 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현대인들의 향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호흡ⅱ'의 틀은 결코 정형화된 모습이 아니다. 어찌보면 쓰러질 듯, 무너질 듯 한없이 삐뚤거나 뒤틀어져 있다. 반드시 옳지만은 않은 우리 사회의 규범과 법규에 대한 고발이다.

류제형은 그렇다고 조각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특수제작한 커다란 비닐과 풍선에 색색의 물감을 담은 '생명-꽃' 이나 기다란 비닐에 검정과 회색 등 무채색을 제외한 형형색색의 물감을 담은 '생명-흐르는 것' 등은 지역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설치작품이다.

이같은 '끼(감각)'가 세상의 인정을 받은 것일까? 2002년 청주kbs 자연환경 미술대전에서 '진화'로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6년에는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 내 한 대형건물 앞에 조형물 '꿈과 기원' 2점을 세웠다.

류제형은 앞으로도 호흡시리즈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기존 작품과의 차이라면 오브제를 달리하고 틀을 만드는 과정이 바뀐다는 것. 하나하나 엮어가던 틀을 돌이나 나무 등의 속을 파내 그 안에 풍선을 불어넣는 과정으로 전환될 예정. 여전히 풍선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한다.

"풍선은 터질듯 극도로 팽창이 가능하고 그 팽창은 우리에게 긴장을 부여합니다. 사람과 아름다움에 대한 영원한 갈구, 새로운 세상으로의 다가섬처럼 말이지요."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작가, 그러나 과거와 미래를 단절시키지 않는 류제형이 오는 10월 첫개인전에서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기대반, 설레임 반이다./글=이성아기자·사진=노수봉기자

스피드 인터뷰

청주시창작스튜디오 입주 4개월째. 대부분 작가들은 짐정리를 마치는 대로 작업에 몰두했지만 류제형은 고작 작품 두 개를 만들었을 뿐이다. 천성이 게으르지도 않고 작품 크기 또한 빅사이즈가 아닌데 참 이해 못할 일이다. 작품이 없으니 작업실은 손댈 곳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그래도 올해 말까지 39개의 작품을 보여주겠다니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동안 작업을 게을리 한 것 아닌가.
"학원을 운영하는 한 친구가 갑자기 건강이 좋지 않다. 학원문을 닫아 걸 수도 없어 그를 돕다 보니 작업에 몰두하지 못했다."

△유아용 장난감인 나무블럭을 확대해 놓은 느낌이다.
"빨강과 노랑 등 원색을 사용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강하지만 두드러지지 않고 딱딱하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이미지란 칭찬으로 이해된다. 아들녀석 장남감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작업을 고민한지 10여년이니 장난감에서 아이템을 받은 건 아니다."

△'진화'와 '호흡'의 차이점은.
"엄밀히 말하자면 진화와 호흡은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구별되지도 않고 구별할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기존의 공간과 틀을 탈출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일부 작가들의 작품들이 상업화한 나머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작품과 상품은 다르다. 작가가 돈벌이에만 관심있다 보면 상품으로 전락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과 자성이 필요하다."/이성아기자yisunga@

작가약력
▲1968년 청원 옥산 출생 ▲세광고·홍익대 조소과 및 동 대학원 조소과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1998)·청주kbs 자연환경 미술대전 대상(2002) 수상▲현 청주시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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