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산외초 교장·수필가)
7월이 사흘 뿐이 남지 않았다. 귀하고 기쁜 시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한 점 후회는 없다. 1학기 동안 건강하고 보람차게 학교생활을 해준 어린 친구들과 학교장의 설익은 제안일지라도 수용하며 행복한 학교를 열어온 교직원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함을 전했다.
한 숨 돌려 살피니 관사 앞 텃밭에는 메뚜기가 튀고 방아깨비 가족들이 초록 잔디에서 미끄럼을 즐기느라 내 발걸음을 놓치고 있다. 아이들 이름표를 하나씩 선사받은 목화분에도 어느 새 우아한 꽃송이를 피우고 있음에 허리굽혀 입을 맞추고 향기를 더듬는다.
충북문인협회에서도 7월이 가기 전 문학기행을 준비했다. 옛도지사 관사인 충북문화관에서 시, 수필 창작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강생들과 함께 전북 부안에 신석정 문학관과 조선시대의 여류 시인 이매창을 기리는 매창공원 일원을 답사하기로 한 것이다. 석정 문학관은 2011년 개관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의 설렘은 깊어만 갔다.
40여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시인의 따님이셨는데 그 분의 아버님을 만나 뵙는다는 역사적 사실이 믿어지지 않은 때문이다. 일행과 곳곳에 반기는 목백일홍을 뒤로하고 달려가니 육척 장신에 서양 영화배우보다 잘 생긴 시인이 전신 사진으로 우리를 맞아줬다. 전시장 한켠에 선생님이 시인과 다정히 찍은 사진이 한컷 전시돼 있어 다행스러움에 가슴을 여민다.
해설사에게 알아보니 선생님은 셋째따님이란다. 감격 중에 놀라운 것은 석정시인은 시 외에도 한학과 서예에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전시장은 종합예술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시인의 첫 시집 '촛불'에 실려 있는 귀한 시들을 수업시간 가끔 입모아 낭송했던 어린 날의 순수했던 교실이 다시 밀려든다.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산비탈 넌지시 타고 나려오면/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중략)
땅엔 옥수수가 힘차게 익어가고 있다. 바다엔 파도가 쉼없이 시를 읽는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여린 마음으로 꽃, 나무, 바람, 파도, 평화, 민족, 나라를 사랑했던 지조의 시인! 문학관을 나와 채석강에서도 시인이 보고 싶다.
충북도 진보교육감이 취임하면서 '함께 행복한 교육'을 꿈꾸고 있다. 신나는 학교, 즐거운 배움이 표면에 드러나는 활동이라면 그것의 근간에는 따뜻한 품성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꽃과 식물을 가꾸며 생명의 경이와 소중함, 비바람을 이기고 싹과 꽃을 피워내는 인내를 익히며 열매가 커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을 말없는 스승인 자연을 통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시인이 그리워한 '그 먼 나라'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이상향이다. '그 먼 나라'를 그리는 곳에 사람이 있고 그것을 앞당기기 위해 누군가의 쉬임없는 교육이 있다.
/박종순(산외초 교장·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