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창단 충북 유일 직장인 여성 밴드
주부·의사 등 6명… 직업·사연 각양각색
"어릴적 꿈 실현… 행복 바이러스 전하고파"

▲ 수혜씨.
▲ 소영씨.
▲ 선희씨.
▲ 보경씨.
▲ 남희선씨.
▲ 국희씨.
▲ 황진이 밴드.

[충청일보 나봉덕기자] 인터넷 블로그, 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시대를 맞아 동일한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뭉치기가 쉬워졌다. 운동과 생활, 취미 등을 공유하고 싶은 이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시대다.  다양한 동아리들을 통해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이들을 소개한다.

 지난 8월17일 오후 4시. 찌는 듯한 더위를 식혀주는 비가 내리던 이날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목련주유소 건물 2층에서 경쾌한 드럼소리가 흘러나왔다. 현란한 춤사위와 심금을 울리는 가락으로 다재다능했던 황진이를 본받기 위해 명명된 황진이 밴드의 연주를 알리는 서막이다.
 지난 2012년 창단된 이 밴드는 충북 최초의 유일한 직장인 여성 밴드다. 입소문과 인터넷 등을 통해 모인 6명의 '황진이'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다음 무대에 오르기 위한 즐거운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 음악이라는 열정으로 모인 6음계의 하모니
 황진이 밴드는 건반 선희(44), 보컬 국희(48), 일렉기타 인소영씨(46), 드럼·베이스 남희선씨(46), 드럼 보경(57), 드럼·색소폰 수혜(53)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이름 대신 각자에게 어울리는 '닉네임'으로 호칭하고 있다. 자신들이 다루는 다양한 개성의 악기만큼 직업도 다채롭다. 평범한 주부를 비롯해 공인중개사, 의사, 쥬얼리샵 운영, 라이브 무대 멤버 등이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음악을 향한 열정이다. 지금은 비록 악기를 다루는 개인차가 있어 수준 높은 합주를 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챙겨주고 위로해주는 가족처럼 한 자리에 모여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전파한다. 6인6색의 6음계가 '행복 바이러스'를 공유하는 것이다.
 

 ◇ 실수와 아찔함, 그리고 감동
 2012년 충북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 원마루시장에서 창단 이래 두번째 합주를 했다. 긴장하고 떨려 바람이 불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대에 무작정 올랐다. 한참 합주를 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바람에 악보가 넘어갔다. 당시 드럼을 치던 수혜씨의 악보였다. 기타를 치던 보경씨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손쓸 수가 없었다. 수혜씨는 얼굴이 새하애졌지만 재빠르게 한손으로 쓰러지는 악보를 잡았다. 또 다른 한손으로는 드럼을 계속 쳤다. 천만 다행으로 관객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합주가 끝났다. 수혜씨는 "이 합주가 끝난 뒤로는 무조건 무거운 악보대를 사용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평소 합주 전 가족들에게 합주 사실을 알리는 보경씨. 합주 당일 몇 시간 안돼서 가족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합주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린 적이 있다. 합주를 한창하고 있는데 관객석에서 꽃을 들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자식들과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서 있었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남편이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기뻤다. 밴드를 시작하고 보경씨에게 일어난 가장 큰 감동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국희씨는 2012년 청소년 광장에서 펼쳤던 첫 무대를 잊을 수 없다. 비록 완벽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꿈이 이뤄진 것 같아 벅찬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특히 같은 꿈은 꾸는 같은 중년 여성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이 더 할 것이 업는 기쁨이었다. 당시 감회를 얘기하는 국희씨의 들뜬 얼굴에서 첫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 완벽한 무대를 향한 욕심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애를 기르다 보니 뒤로 밀리게 됐다. 지금은 자식들이 성장해 부모에 손을 타지 않다보니 시간이 남아 어렸을 때 품었던 음악을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 꿈을 진행하게 된 지금 또 한 목소리로 말한다. "완벽하게 준비를 갖춰 무대에 오르고 싶다. 완벽한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드럼 박자를 맞추고 기타 치는 연습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빨리 연습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연습 도중에 멈춘 터였다.
 국희씨는 좋은 노래를 선보이기 위해 따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 무대를 향한 욕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다음 합주는 10월로 예정돼 있다. 이들은 "그 때 우리의 성장된 모습을 보고 다시 인터뷰 해달라"고 말했다. 중년임에도 더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이들은 이미 완벽한 하모니를 내고 있는 합주다.

[토막인터뷰]

◇ 젊음의 비결
 보경씨(57)는 "악기를 배우고 나서 건강해졌다"고 귀띔했다. 황진이 밴드를 하면서 체력이 부쩍 늘었다. 연습실을 오가고 드럼을 치면서 근육이 붙었다. 건강 뿐이 아니다.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드럼을 치면, 건반을 두드리면, 노래로 소리를 지르면 직장·가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멤버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한몫한다. 황진이 밴드에게 있어 음악은,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삶의 활력소다.
 소녀 때 꿔왔던 꿈이 현실화 됐을 때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 오를 때 이들은 소녀로 돌아간다. 합주를 연습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 서렸다. 인터뷰 내내 보였던 모습도 밝고 건강해 보였다. 보경씨는 "연습실에 오기만 하면 젊어지는 것 같다"며 악기를 배워보길 적극 추천했다.  
 ◇ 소통
 음악은 악기나 노래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다. 소통의 매개체다. 황진이 밴드 멤버들은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그 이전에 연습을 할 때 멤버끼리 소통한다. 수혜씨(53)는 황진이 밴드를 하면서 일의 피로 때문에 연습을 하지 못할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
 연습을 하지 못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도 있지만 멤버들과 합주 연습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크다. 멤버들은 그런 수혜씨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거린다. 같이 악기를 배우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서로의 마음을 터놓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가족 간 이야기 창구가 되기도 한다. 자식들은 악기를 다루는 엄마가 멋있다며 응원해 주고 먼저 다가온다. 남편은 가끔 연습을 하다 늦게 들어올 때 핀잔을 주지만 그들도 역시 어렸을 때 마음속으로 하나 같이 꿈을 품어왔던 사내다.
 소영씨(46)가 집에서 기타 연습을 하면 어렸을 때 잠깐 기타를 쳤던 남편이 기타를 빼어 코드를 알려준다. 처음에는 기타를 알려주는 선생님이 됐다가 결국 혼자 기타를 치는 음악인이 된다. 젊었을 때 음악 학원에서 남편을 만난 수혜씨도 종종 남편과 같이 합주를 한다. 황진이 밴드에게 있어 음악은 가족 간, 동료 간 벽을 허무는 소통의 창구다. 
 

[에필로그]   드럼·베이스 남희선씨

대박 미용실 닫고
진정한 나를 찾아…

 나(남희선·46)는 미용사였다. 20년 동안 가위를 잡고 살았다. 가게를 내고 원장이 됐다. 가게를 찾는 손님도 많았고 수입도 괜찮았다.  솜씨도 그럭저럭 쓸만한지 원장을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미용대학에 강의도 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정을 받을수록 스트레스는 쌓였다. 내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도 손님이 나를 찾으면 나가야 했다. 무료했다. "계속 이렇게 살다보면 내 인생은 남에게 허비한 체 끝나게 될 거야"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과감히 가게 문을 닫았다.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 일은 설계사였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만류했지만 남편은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 자신의 삶을 누려"라며 응원해줬다. 남편의 응원 덕에 설계사가 됐고 회사에 들어갔다. 올해 회사에서 장기자랑 대회가 열렸다. 욕심이 났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상을 탈 수 있어. 품바를 하자 품바는 남들이 하지 않을 거야.' 무대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을 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품바를 했다. 무대가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기상도 받았다.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 꿈틀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갖고자 했던 시간과 그 시간을 들여 이루고 싶었던 꿈이 가슴에서 태동했다. 다음해 장기자랑 대회 때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드럼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드럼을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멋져 보였다. 여러 학원을 알아본 끝에 지역 아마추어 밴드가 연습하는 곳에서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다. 그 곳에서 황진이 밴드를 처음 만났다. 처음엔 낯설었지만다. 정해진 시간대로 레슨만 받고 가는 학원을 생각했다. 이곳은 딴판이었다. 연습이 끝나도 바로 헤어지지 않고 음악과 가족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적응되지 않았다.
 연습에 나오지 않아도 연락이 왔다. 핀잔이 아니라 어디가 아프냐며 걱정해 주는 연락이었다. 부담이 됐지만 이상하게 점점 이 낯선 매력에 젖어들어다. 어느 샌가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조금 다른 꿈을 꾼다 다음해 회사 장기자랑 때 참조 형식으로 이 황진이 밴드와 무대에 서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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