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사랑을 빚는' 젊은 도예가 부부

길 위에 길이 있다. 그 길은 계절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창이며, 계절과 맞닿은 공간의 문이다. 그 길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행하는 투어리스트들의 상처받은 가슴이다.

길은 만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 문화와 문명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 끝없이 조우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지혜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다.

길은 추억이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이별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추억을 만들어 준다. 짧거나 강렬하게, 그리고 촉촉하거나 그윽하게 말이다.

길은 동행이다. 혼자 걸어도 혼자가 아니다. 아프고 시린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슴 따뜻한 동반자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시원한 솔바람과 함께 내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춤도 추는 예쁜 파트너다.

여기, 흙으로 사랑을 빚고 있는 젊은 부부 도예가가 있다. 그들은 일상을 부드럽게, 그리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가꾸는 연금술사다. 부부가 걷는 그 길이야말로 꽃향기 그윽한 굽이굽이 오솔길이다. 그 길의 끝에는 무언가 아주 특별한 것이 저절로 손에 잡혀져 사랑으로 여울질 것 같은 느낌이다.

흙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하고 싶다

충북 영동군 용산면 부상리에 자리잡은 옛 부상초등학교.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아이들이 맑은 눈을 말똥거리며 운동장으로 뛰어나올 것 같은 그곳에 도예가 박대우 신효정씨 부부가 살고 있다. 부부의 작업장이자 삶의 공간이며, 살아있는 평생학습의 장이다.

박대효씨(36)는 자연의 숨결을 온 몸으로 체감하면서 자연을 닮은 도예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지난 1998년 이곳 부상리 폐교에 터를 잡았다. 가슴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흙으로 빚는데 이만한 공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옥천에 터를 잡은 것이다. 이어 이듬해에는 신효정씨(35)가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박대효씨는 도자를 전공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흙을 만지고 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행복하고 좋았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도공으로부터 흙빚는 기술을 배우고 흙빚는 마음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신효정씨 역시 조소를 전공했지만 박씨의 흙사랑과 열정에 넋을 잃고 한 길을 가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눌러 앉았다. 흙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하고 싶다는 게 이들 부부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이들 부부의 하모니는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남편이 흙을 빚으면 부인은 그 곳에 꽃을 그렸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물레를 차 그릇을 빚기도 하며, 상감기법으로 벤치나 수반 같은 다양한 그 무엇을 창작해 내고 있다.

부부의 작품은 한결같이 예쁘다. 그냥 작품이 아닌, 아름다운 향기가 그윽하게 코끝을 스칠 것 같은 기쁨과 설레임을 만날 수 있다. 해바라기, 망초, 개나리, 나리와 같은 야생초가 그곳에 곱디곱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미에서 조형미 넘치는 작품까지 다채

처음에는 실용미로 가득한 것들만 빚었다. 공예는 곧 쓰임이자 실용이라는 부부의 소신 때문이다. 반상기세트, 머그컵, 주전자, 화병, 접시 등 생활공간에서 유용하고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소품을 만들고 그곳에 예쁜 꽃과 야생초를 그렸다.

투박하고 거친 도자기가 아니라 화사하고 자연미 가득 담겨 있는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하이터치 솜씨가 뛰어나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미가 가득한 조형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영동읍 주곡리 포도마을의 농촌마을가꾸기 대표작가로 선정됐다.

1년만에 이 마을을 사계절 아름답고 화려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을 입구의 다리에서부터 버스 승강장, 담벼락, 마을회관 등 곳곳에 도벽과 벽화작업을 통해 예쁜 옷으로 입힌 것이다. 집집마다, 발 닿는 곳마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고, 아름다운 들꽃으로 가득하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최근에는 영동군 읍내에 길이 30여m, 높이 2.5m의 대규모 도자벽화 작업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영동의 문화브랜드인 국악을 자연환경과 함께 표현한 작품인데 이곳에 투입되는 흙의 양만도 4톤이 넘는다. 이 때문에 부부는 밤낮없이 작업에 몰입 중이다. 머잖아 부부의 열정, 부부의 지혜, 부부의 솜씨, 부부의 사랑이 거대한 작품으로 새롭게 선보일 것이다./변광섭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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