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7년 5월 30일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행태는 보기 딱하다.

사건 초기부터 늑장 수사로 봐주기라는 의혹을 샀다. 본격 수사에 나선 이후에도 부실수사 의혹은 오히려 더 커졌다. 급기야 자체 감찰에 나설 정도로 사태가 악화됐고, 수사 관련 간부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번 사태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수사권 독립을 원하는 경찰의 바람은 이제 국민적 지지를 받기 힘들게 됐다. 조직 내부는 책임론을 둘러싼 내홍으로 동요하고 있다.

고위 간부들이 사건 축소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수뇌부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노골적으로 이택순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청장은 '강 건너 불 보듯'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유감이다.

물론 '한화 측으로부터 청탁 받은 사실도 없고,축소수사에 직접 개입한 적도 없다'니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위 간부들을 봐주기 수사에 연루됐다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할 정도라면 응당 지휘책임을 지는 게 도리 아닌가. '혼자만 살려고 경찰을 팔아먹었다'는 얘기가 왜 나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이 청장은 사건 발생 후인 지난달 29일 께 고교 동기동창인 한화그룹의 유모 고문과 통화한 사실을 뒤늦게 '실토'했다.

비록 '네가 낄 일이 아니다'라고 면박을 주는 등 부적절한 접촉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믿기 어렵다. 통화 사실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서도 부인했다가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마지못해 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감추고 있는 게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청장은 거짓말에 국회에서 위증까지 한 꼴이다. 15만 경찰의 총수로서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경찰의 신뢰를 회복하고, 흔들리는 내부 조직을 조속히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이 청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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