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박광호ㆍ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광호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골치 아픈 세상 우스개 소리 한 번 해보자.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나니 종이가 없다. 그래서 왼 쪽 칸, 오른 쪽 칸을 두드리며 종이를 구걸하는 걸 4글자로 무엇이라 할까?답은 좌충우돌(左衝右突)이다.

그러면 앞 칸 사람이 바지 올리다가 흘린 500원 짜리 동전이 떼구루 굴러 나한테로 왔다면 넝쿨호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휴대폰을 빠뜨렸다면 무엇일까. 소탐대실(小貪大失) 이다.

하나 더. 옆 칸 사람도 자신처럼 변비로 끙끙대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다. 한 때 유행했던 화장실 4자성어(成語)다.

지식인 전유물 아닌 대중어

요즘 너도나도 4자성어를 내놓고 있다. 4자성어라면 왠지 고상한 것 같고 한문을 꽤 아는 사람만 쓰는 전유물로 여겼던 건 옛날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인 교수들이 매년 그 해의 특징을 4자성어에 담아내고 있는데 그무게 때문에 그런 지 당시 상황을 비판적으로 풀이하며 일반인들의 공감을 곧잘 얻어낸다.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이 깔려있어 더욱 맛깔스럽다.

교수신문이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가졌더니 지난 2006년을밀운불우(密雲不雨)로 이름 붙였다. 하늘에 구름이 짙게 끼어있지만 비가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주역에서 유래됐다.

여건(분위기)은 익었지만 일은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 직전에 다다른 상황을 뜻하는데, 교수신문은 체증에 걸린 듯 순탄치 않은 국내외 정세가 꼭 이 같다고풀이했다.

그런 교수들이 내놓은 올해의 희망 4자성어는 반구저기(反求諸己)다. 맹자의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활을 쏘아서 적중하지 않아도 나를 이기는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기에게서 찾을 따름이다)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남을 탓하기 전 나를 돌아보라, 한 마디로 내탓이오하며 겸손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뜻이다.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말아야

정치인도 4자성어를 즐겨 쓰는 데 빠지지 않는다. 은유적으로 남을 비꼬기도 하고 적당히 자신을 추켜 세운다. 현 정국을 아리송한 말로 바꾸어 이런저런 비유를 늘어놓기도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품위도 있어 보인다.

특히 연말이나 연초면 봇물 터지 듯 나온다. 지난해 말에도 그랬고 올 초에도 그랬다. 연말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으로 거의 확실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천작우(旱天作雨)를 내놨다.

맹자가 한말로 한여름에 가물어서 싹이 마르면 하늘은 구름을 지어 비를 내린다는 뜻이다.

역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다 본대회 전 중도하차 한 고건 전 국무총리도 4자성어를 풀었다. 주역 에 나오는 운행우시(雲行雨施),구름이 움직이니 시원하게 비가 뿌린다는 내용이다.

둘 모두 구름과 비를 소재로 했는데 구름은 여론때(시기) 출마를 말하는 것 같고 비는당선 선택을 뜻하는 걸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정치인들이 4자성어로 자신을 포장, 때깔 좋게 하는 걸 탓하고 싶지 않다. 선택 받길 원하는 자신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걸 굳이 색안경 쓰고 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말의 성찬(盛饌)으로 겉만 풍성하게 끝나지 말고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의 내실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4자성어도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올 연말 대통령 선거 때까지 또 어떤 4자성어가 나올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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