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손길로 활시위에 '민족 혼'을 담다

 

[세종=충청일보 전병찬기자]"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지켜준 혼이자 무기인 전통 활인 각궁(角弓) 전시관을 세종시에 세우는 것이 간절한 소망입니다."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서 '국궁제작소'라는 공방을 운영 중인 주장응 장인(61·사진)은 전의 궁장(弓匠)으로 불린다. 
 

스무살 때부터 신비로움을 느껴 우리 전통 활인 각궁 제작에 신명을 바쳐왔다. 천안시 동이면이 고향인 주 궁장은 스무살 때인 지난 1973년 경기도 부천에 사는 누나 집에 갔다가 각궁을 처음 보고 호기심에 배우기 시작한 것이 운명이 됐다.
 

누나의 시아버지는 각궁 제작 국가무형문화재 47호인 김장환(1985년 작고)궁장이었다. 김장환 선생은 주 궁장을 2년 간 지켜본 뒤, 주 궁장의 사람됨과 솜씨를 알아보고 정식으로 제자를 삼았다.
 

주 궁장은 1978년까지 스승과 숙식을 같이 하며 6년간 각궁 제작기술을 배운 뒤 지난 1979년 당진 활터인 학유정에서 직접 제작을 시작했다.같은 해 자신이 만든 활로 전국궁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여러 차례 전국대회에서 상위입상을 하면서 주장응 궁장의 명성이 알려지게 됐다. 주장응 궁장은 지난 1982년 7월부터 당시 충남 연기군 관운정으로 이적해 조치원 각궁 제작을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는 동산정에서 연기군 활 동호회(현재 세종시 활 동호회)를 이끌며 40년 넘게 우리 전통 활인 각궁 제작과 후배 양성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자 이상운씨와 박진규씨가 전남 광주와 전동면 미곡리에서 각궁을 제작하고 있으며, 주 궁장의 아들 학유씨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활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궁도 발전 이바지

전국에 각궁을 만드는 사람이 현재 10여 명 있다. 그 중 주장응 궁장은 1년에 100여 장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각궁의 가격은 잘 나온 활이 1장에 80만 원 선이다.각궁은 전국 궁사들의 주문생산에 의하는데 주 궁장이 만드는 연기각궁은 전국대회에서 놀라운 성능으로 우승확률을 높여 궁사들에게 인기가 높다.
 

주 궁장은 처음에 활을 만들며 '조치원 활조'라는 이름을 쓰다가 지난 2010년 9월14일 충남무형문화재 43호로 지정되면서  '연기각궁'으로 상표를 바꿨다.주장응 궁장은 현재 세종시대표 감독, 동산정 사두(궁사 우두머리), 충남궁도협회 이사, 충남도대표 감독 등을 맡아 후배양성에도 힘을 쏟으며 한국 궁도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전통문화발전을 위해 세종시 금남면 나성길 금강변에 위치한 독락정(충남도 문화재자료 264호)에서 매년 고려 말 충신 임난수(1342~1407) 장군의 충절을 기려 개최하는 독락문화제에서 궁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자신의 집 한 켠에서 외롭게 각궁을 제작하고 있는 주장응 궁장.
 

그의 간절한 소망은 스승인 김장환 선생을 기려 경기도 부천시가 '시립 부천김장환각궁전시관'을 건립했듯이, 세종시에 그동안의 자료를 전시해줄  '세종시각궁전시관'을 만드는 것이다.

 ◇제작 소요기간 무려 1년

우리나라 활은 길이에 따라 '장궁'과  '단궁', 재료에 따라 '한목궁'과 '복합궁'으로 각각 나뉜다.한목궁은 한 가지 재료만을 사용하고 복합궁은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각궁은 각종 동·식물성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연하고 강한 탄력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10여가지의 활이 존재했지만, 현존하는 것은 각궁뿐이다. 그래서 보통 '국궁'(國弓)이라고 부를 때에는 각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주장응 궁장이 만드는 활은 복합궁으로 대략 1년에 걸쳐 제작되는데, 대나무, 참나무, 산뽕나무, 아카시아나무, 화피, 물소뿔, 소힘줄, 민어부레풀 등을 이용해 만든다.
 

물소뿔과 소심줄은 태국산과 중국산을 쓰지만 나머지 재료는 주 궁장이 발품을 팔아 직접 구한다.재료는 주로 여름에 재료들을 마련해 쓰임새에 맞게 잘 다듬어 놓고 찬바람이 부는 가을부터 본격적인 접착작업에 들어가 이듬해 2월말이나 돼야 비로소 활이 완성된다.
 

각궁의 길이는 90~120㎝안팎의 짧은 활이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활보다 사정거리가 최대 1㎞로 월등하다.실제로 조선시대 우리활의 우수성은 임진왜란 때 위력을 떨쳤다. 각궁의 유효사거리가 250~500m까지 날아가다 보니 근접전에 유리한 조총(유효 사거리 50m)에 비해 훨씬 살상 효과가 커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도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각궁 한 장이 탄생하는 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1년이 걸린다.봄부터 여름까지 재료를 마련해 잘 다듬어 놓고 찬바람이 부는 가을부터 본격적인 접착 작업에 들어가 이듬해 2월이나 되어야 활이 완성된다.
 

활 제작과정은 각궁 손잡이 아래와 윗부분을 '오금'이라 하는데 오금은 물이 오르지 않은 2월에 대나무를 채취해서 불에 구워 만든다.4~5월에는 물이 좋은 참나무를 베어 좀통(각궁 손잡이)을 만들고, 가장 덥고 습기가 많은 8월에는 소뿔을 채취하고 9월에는 틀을 짜서 다듬질한다.
 

10월에는 부각(뿔을 얇게 떠서 활대에 붙이는 것)을 한다. 12월부터 1월까지는 소 등심의 힘줄인 '심줄'을 놓는다. 소심줄은 국내에서 15년 전부터 얻기가 힘들어 중국에서 수입해 쓴다. 각궁 한 장에 보통 소심줄 8조각을 붙여야 한다. 2월 말까지 소심줄을 민어부레로 만든 풀로 수십 차례 반복해서 붙이고 나면 드디어 한 장의 각궁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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