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지현동 향기누리봉사회
지난 1972년 4월 안정숙·최성수씨 발족
봉사기금 마련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
환경정화·반찬나눔·경로잔치 등 활동 다채
"고맙다는 말 한마디·작은 정성에 힘 &

▲ 지난 6월 충북도종합자원봉사센터로부터 으뜸 봉사상을 받은 뒤 회원들이 지현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충주=충청일보 이현 기자]회원 20명 평균연령 65세, 봉사경력 40여 년, 하루 평균 봉사시간 7시간, 회원 1인당 월 30시간 봉사. 충주 지현동향기누리봉사회(회장 안정숙)를 소개할 때 필요한 수치다.
 

충주지역 봉사단체의 맏이 격인 이 봉사회는 극성맞은(?) 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댁이거나 풋풋한 청년 시절 봉사의 연을 맺어, 머리 희끗한 지금까지 이어오기에는 극성맞아 보일 만큼 오롯한 마음 씀씀이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외로운 어르신과 장애인의 벗이 돼, 함께 삶의 여행길을 동반해 온 그들의 주름살 마디마다 봉사의 기쁨이 담겨 있다.

 

이들의 봉사의 시작은 42년 전인 197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마을부녀회원과 지도자로 일하던 안정숙 회장(73)과 최성수 부회장(69) 등 몇몇이 "지현동을 위해 일해 보자"며 일을 벌인 것이 시초다.

당시는 봉사활동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지만 어렵고 힘든 삶을 이어가는 이웃들에게 작은 위안을 나누는 기쁨을 맛보면서 힘드는 줄 모르고 일했다.

그 시절 회원들은 봉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될 만한 일들을 직접 찾아 다녔다.

봉사에도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3000~4000원씩 들어가는 교통비는 각자 쌈짓돈으로 해결했지만, 어르신들에게 드릴 반찬 한 가지라도 제대로 만들려면 기금이 절실했다.

온 동네를 다니며 악착같이 폐품을 모았고,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세제와 소금, 김, 미역 등을 팔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현동은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슈퍼마켓도 하나 없고, 관공서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폐품 모으기는 시에서 1등을 할 만큼 열심이었다.

지현천 옆에 2~3일만에 산더미처럼 10t에 달하는 고물과 고철, 폐지를 쌓을 만큼 극성스럽게 모았다.
 

종합운동장에서 행사가 열리면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도토리묵을 쒀 팔았고, 직접 뒷산에서 쑥을 캐 떡을 만들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구더기가 득실대는 온 동네 수십 개의 음식물쓰레기 중간 수집용기를 모조리 닦았다.
 

지현동 봉사자들은 극성스럽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도 이웃들이 좋은 일 한다고 물건 값에 더 얹어주며 마음을 보태줘 힘이 됐다.

지금은 힘에 부쳐 그렇게까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뿐이다.
 

1993년 자원봉사 개념이 도입되면서 지현동 재가노인팀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후 작은손봉사회, 풀뿌리봉사회 등으로 옷을 갈아 입었지만 나눔의 마음을 대하는 손길에는 변함이 없다.
 

지현동향기누리는 80~90대 홀몸노인 30명과 결연을 맺어 내 부모처럼 돌보고 있다.

월 1~2차례씩 장조림, 장아찌, 두부 부침, 무우 생채, 김치, 어묵 볶음 등 이런저런 반찬을 3가지씩 만들어 전하며 어르신들을 만나 안부를 챙긴다.
 

봄에는 어르신들과 벚꽃놀이에 나선다.

홀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에게 나들이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버스를 타고 수안보온천에 들러 말끔하게 겨우내 묵은 때를 씻어낸 뒤, 충주댐 공원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흐드러진 벚꽃 아래 보내는 한나절은 외로움이 몸에 밴 어르신들에게 두고두고 추억된다.
 

복날이면 삼계탕을 끓여 대접하고,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만두와 떡 선물 등 자식이 부모 대하듯 돌본다.

수시로 어르신들 댁을 찾아 안부를 확인하고 가사를 대신한다.

누구 할머니 댁 천장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달려가 뚝딱 고쳐 주고, 수도관이 터졌을 때도 한달음에 달려가 손봐 준다.

단순 일회성 봉사가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을 케어하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또 충북장애인종합복지관에는 주 3~4회씩 나가 배식과 설거지를 돕고, 행사가 있을 때면 수시로 찾아가 식사 준비와 김장 담그기에 손을 보탠다.

남부노인복지관에도 화요일마다 급식을 돕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월 2회씩 장애인과 어르신들의 목욕을 거든다.

이들 기관들은 지현동향기누리가 아니면 운영을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정작 회원들은 그 흔한 야유회도 한 번 가지 못했다.

몇 푼 모이면 반찬이며 작은 선물을 들고 어르신들을 찾을 때 맞아주던 환한 웃음이 생각나기 때문에 회원들끼리 가는 관광에는 선뜻 손이 나가질 않아, 이제는 아예 갈 생각도 들지 않는단다.
 

이밖에도 소주 병뚜껑 모아 쌀 전달, 음식물 분리수거 캠페인, 무술축제 환경정화, 쌈지공원 잡초 제거, 지현천 쓰레기 제거, 각종 행사·대회 급수봉사 등 가리지 않고 봉사에 나서 왔다.
 

안 회장의 아들인 방송인 조영구씨(47)도 어머니를 거들어 조용히 봉사에 나서고 있다.

사랑의 밥차와 평양예술단을 초청해 노래와 공연으로 흥겨운 시간을 갖고 경로잔치의 사회를 보기도 한다.
 

80~90대 어르신들을 돌보다보면 가슴 아픈 광경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어느 해인가 밑반찬을 들고 신촌 꼭대기의 한 어르신을 찾았는데 식사는 물론 물도 넘기지 못한 채 앓고 있어, 손주 며느리에게 급히 전화를 넣었다.

하지만 이튿날 결국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자식들에게 연락이 닿아 마지막 가는 길을 가족이 지켜보며 눈을 감게 되면 아쉬움이라도 덜하지만, 그마저 허락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루는 결연 어르신을 찾아갔더니 대문도 방문도 열린 채 TV가 켜져 있고, 어르신은 고개를 숙이고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어르신 저희 왔어요"하며 어깨를 흔들어 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고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허둥지둥 동 주민센터에 연락을 하고 겨우 자식들에게 알려 수습하게 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오래 기억됐다.

▲ 회원들이 함께 모여 홀몸노인들에게 전할 떡을 담고 있다.

 

최 부회장은 "어르신들이 혼자 돌아가시면 어찌어찌 자식들과 연락이 돼 장례를 치르지만, 자식들이 있는데도 홀로 TV의 배웅 속에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 현장을 대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며 온다"고 말했다.
 

힘에 부치고 속 상하는 일이 있어도 봉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작은 기쁨들 때문이다.
 

안 회장은 "어르신이 덮고 있던 이불이 더러워 보여 집으로 가져와 빤 뒤 며칠을 말려 가져 갔었다.

다음 날 그 어르신이 '두부장수가 왔길래 한 모 샀네'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3000원 짜리 두부 한 모를 건넬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또 반찬을 만들어 일일이 어르신을 찾아갔다가 마실이라도 나간 빈 집에는 우체통 같은 곳에 두고 오면, 나중에 "꺼내 왔어, 고마워"하며 전화가 온다.

지현동은 없는 노인들이 많이 산다. 월 7만~10만 원짜리 사글세 방 한 칸에 몸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고맙다며 두부 한 모, 집에서 심은 호박 한 덩어리를 따서 내줄 때, 길에서 만나면 잊지 않고 "자식들도 안해주는 일을 돌봐줘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건넬 때 힘이 솟는다.
 

박종선 지현동장은 "회원들의 평균연령이 65세가 넘는데도 수십 년 동안 매달 반찬나눔, 도배, 목욕서비스 등을 정기적으로 봉사하고 있어 한없이 존경스럽다"고 평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들에게 "오히려 봉사 받아야 할 연세들이신데 힘드시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고집스러운 회원들의 봉사는 여전히 계속된다.

회원들은 '자신'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이들 대부분이 다리며 심장이며, 당뇨, 골다공증 등을 앓아 나이를 속일 수 없지만, 아침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봉사를 나가는 게 마음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 회장은 "40여 년 동안 딱 한 달 봉사활동을 안했던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다 그만 둬야겠다'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결국 다시 나서게 되더라"며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이왕 봉사하려면 이름만 걸어 놓고 대충 할 일이 아니라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힘 닿는대로 가서 도와주자고 마음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어도 우리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다 잊게 된다. 봉사하며 나누는 재미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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