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눈으로 바라본 세상 … 숨겨진 자아찾기

동반자이자 아웃사이더인 '개' 등장 시켜
他者개념서 발전 사회현상 등과 소통 시도


그림 속에 개가 있다. 개들은 사람과 인간사회를 주시한다. 그들이 주시하는 세계는 아주 다양하다. 카페에서의 생활여유도 있고 군악대 행진 속의 일사불란함도 있다. 또 전쟁의 아픔과 인종학살의 피비린내도 빠지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개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간절하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하다. 개들은 인간들의 문제와는 달리 너무도 평화롭게 교미를 하며 종족번식을 꿈꾼다.

언제부턴가 서양화가 최민건(32·충북 청주시 남주동) 인생에게 개가 끼어들었다. 그림 속 개들은 때론 제3자로 사람들을 관망하고 동반자로 미래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여기서 개는 작가 자신인 동시에 자신을 지켜보는 제 3자의 눈이다. 그것에는 항상 약간의 거리감이 주어진다.

최민건의 개는 '자아찾기'에서 시작됐다. 2002년 대학 시절, 무심코 동물에게 눈길을 돌렸던 게 이유다. 적극적 피사체를 삼아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개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애완동물이면서 친구와 동반자 개념이다. 하지만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사회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최민건은 슈퍼맨, 걸어가거나 서있는 인간의 하반신, 흐릿한 도심의 풍경 가운데 혹은 가장자리에 인간 군상들을 배열하고 있다. 최근에는 화면에 동물, 그것도 개의 표정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것들의 형상은 디지털 게임이나 컴퓨터 화면에 잠시 등장하는 아바타의 모양이거나 팬 마우스로 가까스로 긋는 모양이다.

일단 주체적으로 화면에서 증식되고 있는 개의 이미지는 대상의 논리를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기계적이고 디지털적인 기교를 몸으로써 다시 체험하는 과정이요 시간일 뿐이다.

그가 디지털적이고 만화적인 떠돌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화면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이미지의 자체가 하나의 기관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각각이 움직이는 기관들은 다른 의미를 품다가 다른 기관들과 충돌하고 또 다른 의미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구체적인 경험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초감각적 이미지들은 끊임없는 변모를 통해 잠재적인 의미작용을 일으키며 연쇄됨으로써 하나의 내러티브로 화면에 점철된다. 패러디영화에서 보여지는 원작의 본래의 의미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화면의 이야기들은 또 다른 이야기와 이미지를 계속적으로 증식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차이들은 나의 작업에서 보여 지는 아바타의 이미지나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들은 화면 속으로 들어와 충돌하게 한 후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디지털적인 외양을 하고 있지만 다시 화면에 수행함으로써 빠르게 지나쳐 버린 것들, 놓치고 간 것들을 재음미하고 재해석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최민건의 개는 타자(他者)의 개념으로 한층 발전한다. 개는 화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움직임으로, 때론 표정으로 사람과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려는지 작가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작가 또한 타자이고 화면속 개, 보는 관객 또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개는 선험적 경험으로의 세계 안내자 역할을 수행한다. 안내자를 따라 선험적 경험을 공유하며 타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사회적 자아가 된다.이렇듯 외재적인 것이 자신의 세계를 관류해 타자의 모습 속에 자아가 있음을 감지해 나간다.

그림과 관계, 관람자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 타자를 발견하고 인정함으로써그 속에 내재돼 있는, 또는 타인을 향해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류말살 프로젝트’는 더욱 철저하게 이원화된 무심함과 방관자적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는 전쟁과 학살을 통해 점점 피폐화되고 있는데개들은 평화로운 교미를 시작한다. 그리고 환락을 꿈꾼다.

최민건의 개들은 요즘 아주 큼지막하게 화폭 속에 등장한다. ‘뭘 원하니?’시리즈에서 보여지듯, 그림속 개의 눈동자에는 뭔가가 끊임없이 비춰진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기력하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주시하고 관망할 뿐이다.


이처럼 최민건 작업에서 보여지는 단서들은 현대의 동시대적 미술에서 보이는 알레고리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한 자화상 그리고 상식적이고 널려있는 대상에 대한 의외의 해석과 표현들인 것이다. 그것들은 다시 그림을 통해 상투적이 되고 억압돼 있던 의미의 귀환작업이 된다.

전체적이고 수직적 틀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전혀 다른 배치와 일관성을 버리는 것은 여러 의미와 해석에 차원으로 변환하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적인 이미지와 아날로그적인 이미지의 병치, 그려진 고정된 화면에 투사되는 비디오 영상과 같은 일련의 작업들은 그러한 의미들의 실천들이면 결과물이기도 하다.

현대예술이 한사람의 예술운동 시대라고 볼 때 과거의 이데올르기 사상이나 이념들이 현대의 예술작품에 상당히 불편하게 작동될 수 있다. 그렇다고 예전의 그것과 전혀 다른 상황도 되지 않는다.

최민건은 어쩌면 그것들의 찌꺼기 일 수도 있는 것들, 그것에 수긍하며 자유로운 탈피를 시도한다.

“돌이켜보면 작업의 앞뒤가 바뀌어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돌렸다는 얘깁니다. 지금 순간 자아를 먼저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림 속 개가 명랑해지는 순간이 해법을 찾았다는 의미가 될 겁니다. ”


스피드 인터뷰

그림 속에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건 유쾌한 일이다. 이야기는 작가의 철학과 가치관을 대변하기 마련. 그래서 설명을 듣다보면 작가를 이해하게 되고 잊었던 기억과 세상을 떠올릴 수 있다. 최민건의 얘기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림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개를 통해 자아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사회현상을 들춰내기도 한다. 작가와 관람객이 호흡을 함께 하며 세상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동물들 중에서 개를 선택한 이유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애완동물이다. 때론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지만 여전히 인간사회의 구성원은 될 수 없다. 한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존재를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싶다."

-요즘 그림 속 개들의 표정이 무기력해 보인다.
"어쩌면 내 존재일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도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다. 답을 찾을 때까지 이 모습이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 걸기에 좀 부담스러운 그림이라고 보인다.
"표정도 우울하고 사이즈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 속 그림이 아니라 아웃사이더로의 시각이기 때문에 보다 큰 공간지향을 추구했다."

-하나같이 외래종을 등장시켰다. 이유가 있나.
"내가 보지 못한 세상으로의 동경이 잠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낯설지만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낯설었던 것들을 흔히 봐왔던 것처럼 표현했다. 객관적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약력

▲1976년 서울 생▲서울 재현고·청주대·동 대학원 회화학과 졸업 ▲조흥갤러리(2003)·스페이스 몸(2005)·대전시립미술관(2006)·갤러리pici(서울, 2007)·자인제노갤러리(서울, 2008) 등 개인전 ▲‘탐구하는 것 감지하는 것’(무심갤러리,2002)·우수청년작가초대전(가이아갤러리,2003)·ima] 長埼カラ(일본 브리크홀 나가사키, 2004)·남남북녀 (가나아트포럼, 2005)·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2006(대구예술회관, 2006)·청주예술제 프로젝트 和(2007) 등 그룹전 ▲2006년도 청주하이브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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