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취미로 시작… 사업실패 역경 딛고 재기 성공
한국 서예문인화 대전 서각작품 최초 '대상' 등 명성
"내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행복되길 바라"

▲ 혼신을 다해 서각 작품을 만들고 있는 엄재봉 서각예술가.

[음성=충청일보 김요식기자] 날카로운 칼날과 망치로 그려내는 나무판 위의 서각 그림은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다.
 

취미로 시작한 서각이 어느덧 40여년이 지나 이젠 손을 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천직이 된 서각예술가 엄재봉씨(68·음성군 맹동면 봉현리).
 

그는 굵은 손마디에 주름진 손등, 한눈으로 봐도 투박스럽기만 하다. 엄씨가 처음 서각을 접한 것은 20대 후반 취미활동을 하면서다. 아버지가 목수였던 것을 보면 그 능력이 대를 이어 전해진 듯하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 밤 시간에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익힌 서각솜씨는 93년 고향인 경북 문경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며 아들과 공장을 차린 뒤 소품가구 등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그의 소문은 삽시간 퍼져나갔다.
 

10여년 사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그는 목공예에 대한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확인했고 급기야 중국진출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생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게 돼 결국엔 사업을 접고 2007년 자녀들이 있는 대소면으로 이사 오면서 자리를 잡았다.
 

꿈과 희망을 담아 멀리 중국까지 갔지만 그때 생활에 대한 질문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지 않을 정도면 그에게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인홍공방'. 엄씨의 작업장 이름이다.
 

어질 '인(仁)', 클 '홍(洪)' 엄씨의 호를 따서 만든 간판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불교신자인 엄씨는 유독 달마도 작품을 많이 만들어 가정의 불운한 기운을 없애고 행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어 주위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고 있다.
 

엄씨는 2013년 제11회 대한민국아카데미 미술전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한국예총회장상, 올해 제12회 대한민국 서예문인화대전에서 '서각병풍'이 종합대상을 받아 서각작품으론 역대 처음 1위를 한 것으로 전국 최고의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또한 올해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제25조 작가인증서도 받았다.
 

엄씨는 "굴곡진 삶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서각에 대한 무한애정 때문"이라며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해질 수 있면 좋겠다"고 말한다.

 

▲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엄재봉 서각예술가.

서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 꾀어야
 
 서각(書刻)이란 나무에 글씨를 파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시(詩), 서(書), 화(畵)에 쓰일 만큼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쓰는 나무 종류는 단단한 나무, 무른 나무, 결 차이가 나는 나무 등 다양하다.
 서각은 양각과 음각이 있어 글자 안으로 파는 것을 음각, 밖으로 파는 것을 양각이라 한다.
 서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질이 무른 나무로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게 조언이다.
 현대서각은 전통서각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전통적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그게 제약이 돼 예술창조에 가장 중요한 개성과 독창성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통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이 현대서각이다.
 서각과 같이 그 뿌리는 서예로부터 나왔지만 각기 예술로서의 독특한 작품양식과 기법을 갖고 서로 다른 조형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서각을 활용한 붓통, 필통 등 공예작품을 전통을 이어가는 고전미와 현대적인 감각을 통해 다변화를 꾀해 나가야한다.
 
 

▲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엄재봉 서각예술가.

 앞으로의 목표는?
 다양한 계층 위한 교육 실현
 
 경력만 보면 엄씨의 작품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꼭 필요한 사람에겐 재료비만 받고 줄 정도로 욕심이 없으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저 좋다는 그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그대로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서각예술이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예술로 승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지난 생활을 돌아보면 먼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다.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열심히 생활해 가정을 일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서각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작품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그의 꿈은 장소는 좁지만 '인홍공방'인 작업장에서 교육생도 받아 기술을 전수도 하고 다양한 계층에 서각에 대한 교육을 위해 주민 강의 등을 통해 교육을 하고 싶어한다.
 40년 이어온 장인의 꿈이 왠지 소박해 보이지만 그는 서각을 통해 세상의 모든 잡념을 잊을 수 있다.
 엄씨의 그런 소소한 행복이 또 다른 이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나누는 봉사로 빛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 제12회 대한민국 서예문인화대전에서 '서각병풍'으로 종합대상을 받은 엄재봉 서각예술가의 8폭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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