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수학적 비례ㆍ예술미 완벽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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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는 구조적으로 덮고, 지지하고, 버티는 3가지 작용을 수행한다. 홍예 구조물은 필연적으로 쐐기형태의 기계적인 속성에 의존하며 일반적으로 쐐기모양으로 생긴 돌 또는 벽돌(塼)을 연속적으로 쌓아나가면 홍예가 형성된다.
홍예는 응력의 관점에서 보면 기둥과 유사한데 이는 주요 응력이 압축력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둥과 보로 연결되는 구조는 홍예가 발견되기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으나 기둥과 기둥 사이에 올려지는 보는 수 척(尺)을 넘을 경우 지지될 수 없기 때문에 홍예의 발견은 대단히 중요한 기술적 발전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홍예는 평양 낙랑고분에서 처음 볼 수 있다. 쌓는 방법은 벽돌로 3단을 가로로 쌓은 다음 그 위에 벽돌을 세워서 1단을 쌓는 방법(3平1竪)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차차 내부로 기울어지도록 하여 궁륭천장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이후 삼국에 영향을 준다.
특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지방에는 전축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무령왕릉은 벽돌이라는 재료상의 이질성뿐만 아니라 홍예의 천장구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직부터 알려져 왔다.
무령왕릉이 평양 낙랑고분과 중국남조의 전축분과 다른 것은 벽면의 결구(結構)방법에 있는데, 두 지역이 3平1竪인데 비해 무령왕릉은 중국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4平1竪로 치밀한 계획 하에 사면벽체에서 천장의 홍예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하게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술은 통일신라로 이어져 경주 불국사에 청운교·백운교에서 기술적 극치를 이룬다.
그렇다면 석굴암은 어떤가! 중국이나 인도의 석굴은 모두 자연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나, 석굴암은 세계에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인공석굴인데다가 주실의 천장이 궁륭을 이루는 돔(dome)으로 설계되었다.
모르타르가 없던 시대에 낱장의 돌을 쌓으면서 서로의 힘을 의지하며 반구형의 돔을 형성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조금만 역학관계가 어긋나도 안쪽으로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 선조들이 구조역학과 돌을 다룸에 있어서 얼마나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들은 삼국시대의 축적된 다리, 고분, 성곽 등의 석축기술과 문화능력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설계와 공간배치, 수학적 비례 즉 평면 및 입체기하학의 지식을 석굴암에 능숙하게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다 온도 및 습기 등의 자연조절과 과학적인 자연통풍, 모든 조각의 미술적 예술미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학 슬기와 수학적 비례와 아름다운 예술적 미가 이상적으로 합치된 걸작품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무령왕릉과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석굴암에서 보듯 우리 선조들이 만든 홍예 건축물은 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홍예교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홍예석의 각도는 반원의 중심각 180˚를 홍예석의 수로 나눈 값에 가깝게 나타나며, 홍예석의 두께가 두껍고 무게가 무거울수록, 특히 중앙 홍예석이 두꺼울 경우에 견디는 힘이 더욱 강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러한 가장 이상적인 구조가 천년의 세월을 버티게 한 요소가 되었으며, 다시금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과학적 구조기술과 독창적인 건축기술을 증명하는 것이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