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국 청주 세광중 교사
[충청일보]영화 '명량'의 관객수가 1800만명을 돌파하면서 한국영화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해남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축제에는 4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지난 1908년 당시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을 위해 '이순신전'이라는 역사전기소설을 집필했다.
역사적 실제 인물을 소설 작품의 소재로 형상화 했다.
그는 임진왜란과 당시 상황을 동일하게 보고 소설로 이순신을 부활시킨 것이다.
작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단군이 이순신을 보냈으며, 그는 개인의 영달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절개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단재는 이순신을 영국의 넬슨 제독과 견줄 수 있는 위인으로 봤으며, 명나라의 제독 진린도 이순신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진린은 이순신을 "하늘로 날을 삼고 땅으로 씨를 삼아 온 천하를 경륜해 다스릴 인재요, 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키는 공로를 가졌다"고 극찬했다.
일본 학자 도쿠토미 이이치로도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겼다.
조선 전쟁의 전후 7년 사이에 조선에 책사, 변사, 문사의 유는 많지만, 전 전쟁에 있어서 오직 한 사람 이순신만을 자랑삼지 않을 수 없다"고 칭송했다.
단재의 작품에 출현하는 이순신은 고전 소설의 비범한 영웅의 등장과는 다르다.
이순신은 실제 인물이며 그의 모든 행동은 인간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작품을 살펴보면, 당시 백성들이 이순신을 자신의 부모처럼 여겼다.
이는 이순신이 평소 백성들에게 얼마나 존경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 구국할 수 있는 위인은 이순신밖에 없었다.
평소에 위엄과 지혜와 능력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변방의 병사들이나 백성들은 일찍이 이순신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의 '사즉필생 생즉필사(死卽必生 生卽必死)'의 정신은 모든 백성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원균의 패배로 인해 십 여척 밖에 남지 않은 전선으로 명량대첩에서 승리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불외사(不畏死)'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민족의 치욕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단재는 장군의 죽음에 대해 우리 민족이 슬퍼해야 할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그의 손으로 우리를 건졌으며, 그 입으로 우리가 다시 살아나도록 외쳤으며, 뼈만 남은 우리에게 피를 토해 살을 줬기 때문으로 서술한다. 이순신은 죽은 우리 민족을 살리고 자신은 죽음을 선택한 살신성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소설 '이순신전'은 영화 '명량'을 통해 새롭게 부활했다.
조선과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적 거리는 있다하더라도 시대적 상황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혼란스런 국회는 당파싸움과 다르지 않고 국제적 상황은 당시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이순신과 같은 구국의 영웅이 그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