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101호 임인호씨

▲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활자를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충청일보 정현아기자]자신의 나이도 아내의 생일도, 친구와의 약속도 잘 기억이 안 난단다.
 

일상 생활을 제껴두고 오직 금속활자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101호인 임인호 금속활자장(52)이야기다.
 

지난 9일 괴산군 연풍면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무설조각실'을 찾았다.  
 

지하 1층, 지상 3층 크기의 청주시 운천동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에 비해 그의 작업실은 작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10평 남짓한 이 곳에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 상·하권의 복원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니 내심 놀랐다.
 

지난 2009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지금껏 5년이 흘렀지만 임 씨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며 "단 한번도 자신을 중요무형문화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금속활자의 1인자라는 자신감일까 겸손의 표현일까. 
 

그와 금속활자의 인연은 지난 1996년 8월 오국진씨(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명예보유자)를 만나고 부터 시작됐다.
 

20대 초반부터 목판 등에 글씨를 새기는 작업을 해 온 그는 그해 여름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괴산에 놀러오신 오 선생님께서 우연히 서각을 하는 저를 보러 이 작업실로 오셨어요. 그때부터 인연이 되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오 선생님 작업실 청주 동림서관을 찾아가 뵙곤 했죠."
 

당시 임 씨는 서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푹 빠져들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오국진씨의 금속활자 작업은 '다른세계의 일'이었다.
 

"아니, 오 선생님 작업실에 찾아갔더니 제가 그동안 하던 작업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이 작업은 미친듯이 할 수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몇개월을 그냥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요."
 

"이력서 한 장 써서 가지고 와라"
 

그동안의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1997년 3월 오 씨는 명함 한장을 내밀며 금속활자를 배울것을 권유했다.
 

일과 교육생 생활을 병행할 수 없었다.
 

당시 괴산에서 '무설조각실'을 운영중이던 임 씨는 조각실을 닫기 전 밀린 주문 마무리 작업에 꼬박 일주일을 매달렸다.
 

'따르릉'
 

"너! 배우려면 배우고, 말려면 말아!"
 

오씨가 호통을 치고 전화를 딱 끊어버리자 순간 임 씨는 오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전에는 저를 '임 선생'이라 부르시며 존댓말을 쓰셨는데, 깜짝 놀랐죠. 그날 바로 태어나서 처음 이력서를 썼어요. 제가 그때 다짐한게 있어요. '독한 마음 먹지 않을꺼면 가지말자. 내 자신을 다 버릴 자신이 있다면 가자'였어요."
 

작업실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청주로 향했다.
 

금속활자에 올인한 그의 인간관계는 줄줄이 끊겼다.
 

"안 맞는 부분을 억지로 끼워 맞출 수는 없잖아요. 인간관계에 얽매여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금속활자 외 다른 것은 사소한 일부분 이라고 생각해요."
 

금속활자장은 평생을 배워하는 직업이다.
 

글자를 새기는 작업부터, 쇠를 녹여 붓는 주물(주조), 조판, 인쇄 등 모든 분야에서 프로 수준이 돼야 한다.
 

"일을 배우는데는 공식이 없어요. 스승님과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는 거죠. 비오는 날, 눈오는날, 맑은 날에 따라 변덕스러운 주물 틀을 어떻게 공식으로 표현하겠어요. 혼나면서 배우다보면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와요"
 

글자를 새기다 손을 베이거나 쇠를 붓다가 불꽃이 튀어 옷감에 불이 붙어 화상을 당하기도 부지기수다.
 

위험한 작업이지만 그가 금속활자를 포기를 못하는 것은 '성취감' 때문이다.
 

"자본 붙이기, 밀랍 가지 만들기, 쇳물붓기 등 작업을 거쳐 반듯한 글자가 완성됐을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 그래서 20여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해 오고 있죠"
 

스승을 모시 던 중 후계자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그 후계자를 의식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스승님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 자리를 차지했야겠다라는 욕심을 부렸다면 이미 중간에 포기했겠죠. 후계자는 후계자고 저는 제 할일만 했어요. 금속활자가 좋아 시작한 일인데 누가 오든 달라질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게 금속활자장이 된 된 그의 앞에 남겨진 과제는 '완벽한 직지 복원'이다.
 

"내년이면 직지 상·하권이 모두 완성됩니다. 앞으로도 천연재료로 완벽한 활자를 만들 수 있도록할 노력 할 계획입니다. 조상님들이 직지를 만들었을 때 천연재료로 완벽한 활자를 만드셨어요. 저도 그 당시처럼 완벽하게 직지를 복원해 내는 게 숙제죠."

 

◇"오국진 스승님은 제2의 아버지"


임인호씨에게 오국진씨는 '제2의 아버지'다.
 

지난 2008년 오 씨가 작고하기 전까지 겸상은 물론 나란히 걸어본 적도 없었다.
 

"17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만큼 스승님을 모셨어요. 같이 볼 일을 보고 식당에 들리면 스승님을 챙겨 드린 후 식당 주인에게 '밥과 김치 좀 주세요'하고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먹고  식당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그만큼 스승님은 저에게 가장 존경하고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스승이 작고한지 6년이 더 됐지만 아직도 물 말아먹는 습관을 못고쳤다고 했다.
 

그가 수십년간 모셔온 스승에게 칭찬을 받은 것은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사실 스승님은 여간해서 칭찬을 안하는 분인데  '애썼다', '욕봤다' 칭찬을 해 주실때가 있었어요. 극찬인거죠. 그래도 평생 두어번은 스승님 마음에 쏙 드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죠"
 

금속활자 1대 무형문화재인 오 씨에게 배우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은 많았다.
 

단 1mm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오 씨는 일반인들이 견디기 여러운 스승이었다.
 

오씨 곁에 남은 사람은 많이 않았다.
 

"스승님은 외로운 금속활자 장인이셨어요. 혼자 사비를 들여가며 금속활자를 만드셨죠. 저는 스승님이 닦아온 길을 따라 걷는 것일 뿐입니다."
 

현재 임씨는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에서 아들에게 금속활자 교육을 하고 있다.
 

"아들에게  엄격해요. 안쓰럽다고 생각하면 가르칠 수 없어요.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터득하게되요. 이것이 제가 제자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비법이라면 비법입니다"

 

▲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 체험장에서 시민들에게 금속활자 완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직지 인쇄 과정
 

① 글자본 선정-자본선정은 수서(手書),모사(模寫),판본(版本) 등의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② 자본 붙이기-결정된 자본의 종류에 따라 어미자의 제작에 필요한 두께와 크기의 낱개 혹은 연속된 판형틀을 만든다.
그리고 밀랍(蜜蠟)을 녹여 판형틀에 붓고 응고시켜 밀납판형을 만들고, 그 위에 결정된 자본을 뒤집어 붙인다.
③ 어미자 만들기-밀랍판형에 붙여진 자본에 따라 조각칼을 사용해 양각으로 새긴다.
④ 밀랍 가지 만들기-밀랍봉을 사용해 가지를 만들고 완성된 밀랍 어미자를 한 자씩 낱낱이 붙여 어미자 가지를 만든다.
⑤ 주형(거푸집) 만들기-모래, 황토 등을 혼합한 주물토를 밀랍 가지에 발라 주형(거푸집)을 만든다.
⑥ 쇳물붓기-청동을 녹여 주형의 입구에 쇳물을 붓는다. 이때 주형(거푸집)의 온도와 녹여진 쇳물의 온도가 비슷해야 쇳물이 잘 들어간다.
⑦ 완성된 주조 활자-주형(거푸집)에 부은 쇳물이 식으면 단단해진 거푸집을 파내거나 깨어내서 완성된 활자 가지쇠를 들어낸다.
⑧ 활자 다듬기-완성된 활자 가지쇠가 식으면, 쇠톱 등을 사용해 활자 가지쇠에 달린 활자를 하나씩 떼어 내 다듬는다.
⑨ 조판-인쇄할 책의 내용에 따라 활자를 뽑아 인판틀에 조판을 하는데, 먼저 밀납을 계선 사이에 깔고 열을 가해 녹인 후 활자를 배열한다.
⑩ 인쇄하기-활자면에 먹물을 칠하고 그 위에 한지를 놓고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체를 사용해 골고루 문질러 애벌인쇄를 한다.
인쇄물을 교정 본 후 수정하여 필요한 부수만큼 인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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