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섭교육 체육부장

베이징 올림픽 감동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새정권들어 심각하게 빚어졌던 정치권 갈등과 국제 원재재 값 고공 행진 등 국내·외적으로 악재가 겹치는 상황에서 13개 금메달은 우리나라 올림픽 사상 최대의 수확이라는 쾌거를 이뤘고, 세계 7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으니 얼마나 대단한 위업을 달성한 것인가. 자랑스런 올림픽 태극 전사들이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환호·찬사는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태극전사는 단연 수영의 '마린보이' 박태환과 배드민턴의 '살인미소' 이용대를 꼽을 수 있다.예능 프로그램에는 절대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아버지가 선언한 박태환을 제외하곤 이용대를 비롯해 유도의 최민호나 펜싱의 남현희, 역도의 장미란 등 한동안 올림픽 스타들의 프로축구 시축이나 프로야구 시구·화보 촬영·각종 방송 출연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훈련장에서의 땀방울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영광인 상황에서 메달까지 목에 걸었으니, 그 같은 인기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방송 프로그램이나 자신의 종목과 관련이 없는 다른 경기를 통해 눈에 띄는 그들을 보면서 반가움 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달콤한 휴식을 취하든지, 다음 대회 준비를 위해 각오를 다잡아야 할 시점에 본연의 일과 전혀 상관 없는 문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그들과 같은 올림픽 스타였던 강초현과 황영조가 뇌리에서 떨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사격에서 은메달을 딴 강초현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각 방송사마다 달려들어 뉴스를 만들어냈고, '국민 여동생', '연예계 최고 스타와의 의남매' 등 그에 따라 붙은 수식어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녀의 인기는 말 그대로 신드롬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적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에게 너무도 쉽게 잊혀졌다. 이후 경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고, 애정도 한순간에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강초현이 "제발 저 좀 놔 주세요"라고 했지만 그에 앞서 국민들의 관심은 이미 저만큼 멀어진 뒤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영웅이 됐던 황영조 선수는 한 때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국민과 매스컴의 관심이 얼마나 그들에게 부담이 됐는 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며 일궈낸 '세계의 정상'이기에 그들에 대한 인기는 당연한 권리다.
그렇지만 행사 참석이나 방송 출연 남발, 화보 촬영 등 인기 절정의 연예인 못지않은 다양한 번외 활동으로 인한 과중한 부담은 추후에 있을 대회 준비에 후유증이 될 수 있다. 그 점은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본분이 훈련이라는 사실을 간과, 이번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은 썰물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헹가래를 쳐 주던 그 애정이 식었을 때 바닥으로 추락하는 건 선수 당사자 일 뿐, 환호하는 국민이나 모셔가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매스컴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안타깝게도 모든 일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자리를 지킬 사람은 선수 자신 뿐이다.
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베이징 올림픽 스타들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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