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 16 임성수

어린아이·곰돌이 소재 부조리한 현실 표현
황당한 상황설정 통해 고정관념 탈피 시도

인간의 심장은 사물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가능할 때 두맥질치기 마련이다. 자신의 존재를 느낄 틈새조차 여의치 않은 생활, 배배 꼬인 세상을 제대로 직시하기가 쉽지 않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그림으로 세상과 사물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잃어버린 심장소리를 찾아주는 작가가 있다. 서양화가 임성수(31·사진).만화처럼 예쁘고 환한 그의 그림 속에는 언제나 혹독한 비판이 내재된다. 사회에 대해 발칙한 풍자를 쏟아내는 그를 만났다.



임성수의 그림은 염세적이지 않다. 닫힌 공간이자 일생생활이 담보된 방에서 시작되지만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아이와 그의 친구이면서 천적관계인 곰돌이 인형. 이들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극도화된 부조리와 냉혹함, 잔혹함을 보여준다.

그의 화폭에서는 배경에 대한 설명적인 묘사가 거의 배제돼 있다. 색으로 단절된 면의 구분과 캐릭터가 등장할 뿐이다. 휑한 공간 속에서 캐릭터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고리를 형성하며 때론 친밀하게, 때론 잔혹하게 살아간다. 여기에서는 정해진 승자도, 패자도 없다.

반짝이는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결코 순진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순진할 것이라는 우리의 관념을 벗어난 아이의 본능적 행동은 몇 배 잔인하다. 아이에 대한 어른의 시각은 단지 아이의 잔인함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어른들의 또 다른 편견일 뿐이라는 점에 작가의 생각이 고정된다.

귀여운 아이와 곰돌이가 주인공인 '테이블 시리즈'. 이 그림 속 귀여운 곰돌이의 눈알은 배고픈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꺼리일 뿐이다. 피를 흘리며 허우적대는 곰돌이의 아픔에 아랑곳없이 아이는 무표정하게 맛있는 식사를 한다.

하지만 곰돌이 인형은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핏'처럼 세상의 조종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아이의 머리꼭대기에는 누군가에게 지배당할 수 있는 송신안테나가 등장하고 곰돌이는 아이를 조정한다.

곰돌이의 가위에 의해 갈라지 아이의 배, 식탁위에 길게 드러난 창자, 살짝 미소를 띤 곰돌이는 승자의 교만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의 배는 바늘로 꿰매지고 어느 정도 휴전을 한 이들의 관계는 한순간 뒤바뀐다. 아이는 결국 자신을 괴롭혔던 곰돌이의 눈알을 뽑아 식사를 하는 반전을 이뤄낸다.

이같은 상황설정은 거대한 코끼리의 배 안에서 귀여운 얼굴을 한 곰돌이 인형의 모습에서도 보여지고 하나의 머리에 여러 개의 몸둥이를 가진 '샴 헤드', 거대한 확성기와 그 아래 그것을 추종하고 찬양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성지순례'로 이어진다.

코끼리의 한끼 식사용으로 희생된 곰돌이의 눈은 게슴츠레하게 포악한 지배욕을 드러내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듣기 실어도 들어야만 하는 확성기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는 캐릭터들.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그 속에 빠져들며 동화된 채 무감각해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작품 '풍선껌'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의 꿈을 한껏 담은 풍선껌은 아이 몸체의 몇배나 되는 크기다. 한순간 불었다가 터져 사라지는 허무함의 전 단계. 한껏 부풀어오른 팽창감이 보는 이들에게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자아낸다. 비정상적인 사회와 자신을 풍자하는 이 작품은 수많은 영역의 확장에 대한 꿈이다.

영안실 냉동창고 모습을 형상화한 '서프라이즈'는 제목처럼 충격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물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의 놀래킴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냉동창고의 인물들은 무관심하다. 그들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생명과 희망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학창시절 그렸던 '말도 안되는 설계도' 또한 고정관념에 대한 도발이다. 그림 속에 달콤한 사탕이 있다.

그 사탕을 가위로 싹뚝 잘라 버린다. 잘린 사탕은 즐기기 좋아하고 세태에 길들여진 인간의 두뇌로 흡입된다. 그 두뇌 안에는 화분 시계 신발, 곤충 등 다양한 이미지가 들어있다. 그것을 조립하면서 두뇌는 어떤 몸에 나사로 조립되는데 공교롭게도 안착된 것은 개의 몸이다.결국 우리가 상상과는 달리 인간의 머리와 개의 몸이 결합된 괴물이 탄생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현상들을 고발한다. 고정관념에 대한 과감한 탈피도 시도한다.

이처럼 충격적 상상을 작품화하고 있는 임성수가 요즘 천착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일명 '술래잡기'. 부드러운 털 대신 비늘로 싸여진 고양이가 등장한다. 고양이는 앞을 못보는 주인공을 인도한다. 누군가가 이끄는대로 생각없이 끌려갈 뿐이다.

화폭 한켠에 작은 창문이 있고 그 모습을 주시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창문 뒤쪽으로는 보일듯말듯 고양이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또다른 캐릭터가 숨겨져 있다. 비늘을 입은 고양이를 탄생시킨 작가의 사고의 틀은 또다시 자유분방한 상상인 것이다.

임성수가 그린 캐릭터에서는 감정을 찾아 볼 수 없다. 감정대신 즉각적인 반응이 존재한다. 그의 캐릭터들이 나타내는 표정은 재밌다, 아프다, 심심하다 같은 것들이다. 이런 동사는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가 아니라 상태를 표현하는 어휘이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타인을 죽일 수도 있는 '사이코패스'이자 '좀비' 같은 존재이다. 이들은 감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며 임성수의 그림은 세계의 잔혹함에 대해 어떤 감정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이다.

이들은 그래서 방관자이며 피해자이고 동시에 가해자이기고 하다. 단지 자신의 욕망에 맞춰 충실하게 작동하는 가학기계들인 것이다.

그의 시선은 세계의 편견과 상식의 균열을 냉정하게 발견하는 건조한 관찰자의 시선이며,그림은 다 크지 못한 어린아이의 고독한 유희처럼 자신의 파괴적 충동이 순진무구한 캐릭터로 표현된 것이다. 방 밖의 세계에다 대고 휘두르는 임성수식의 가학적 표현이다.

작가는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사실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외로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항상 어딘가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를 필요로 한다"며 "그것의 통로를 그림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글=이성아기자·사진=노수봉기자

[스피드인터뷰]

작가는 얼핏 그림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처럼 부드러웠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옆에 있을 것 같은 푸근함, 퍼도퍼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웃음까지 머금었다. 그런 작가가 보기와는 달리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린다. 이야기 설정이나 그것을 풍자하는 능력이 보통 아니다.

△얼핏 보면 만화캐릭터 같다. 서양화와는 아주 다른 느낌인데.
"대학시절 전업작가로의 비전을 찾지 못했었다. 이왕이면 생계가 해결될 수 있는 생각이 강했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컴퓨터 그래픽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캐릭터와 연관된 그림이 순수그림보다는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림들이 인기를 얻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림은 운이 있어야만 팔 수 있는 일이다. 그저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잔혹성.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며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고발을 하고 싶었다.내 생각에 공감하는 층이 형성되면 작품이 팔리지 않겠나."

△왜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어렸을 적 만화를 좋아했다. 디자인 등과 같은 그림관련 일을 했었던 경험도 작용했다."

△주제는 같지만 변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정형화되고 패턴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메뉴얼 시리즈를 중단한 것도 그 이유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과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화가의 진정한 모습 아닌가."/이성아기자


[작가약력] △1977년 청주 출생 △충북고.청주대.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hardboiled wonderland'(청주 스페이스몸, 2005)·임성수전(서울um 갤러리/청주 무심갤러리, 2007) △예술 체험 그리고 놀이展(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별관, 2006)·art toon art(서울에니메이션센터, 2006)·swith off, switch on(서울 관훈갤러리, 2007)·'비꼰다'展(서울 자인제노, 서울2008)·crossover 2008 청주+나가사키(청주 신미술관, 2008)등 단체전 18회 △현 청주시미술창작스튜디오 제2기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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